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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기행/대구대교구

가천성당 수륜공소

by photomaker.anon 2026. 4. 19.

 

성주본당은 1950년 한국전쟁 직전에 세워졌다. 2대 주임이었던 독일인 왕묵도(王默道) 레지날도(Redinaldus Egner, 1906-1975) 수사신부가 1954년에 성당과 사제관을 지었다. 당시 1,800명쯤 되는 신자 중 본당신자가 600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16개 공소신자였다. 레지날도신부는 당시 인구 4천명이었던 농촌 가천이 벽지 신자를 돌보기좋은 곳임을 알았다.

 

이후 독일인 정묵덕(鄭黙德) 엑베르트 되르플러(Egbertus Dorfler, 1898-1986) 신부가 성주본당 3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그는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서 1925년 사제품을 받은 직후 한국으로 파견되어 연길 수도원 소속으로 사목하다가 1951년 중국 공산당에 의해 독일로 추방당했고 1956년 왜관으로 돌아와 성주본당 신부로 발령받은 것이다.

 

정 엑베르토 신부는 성주본당에서 1956년부터 8년간 사목하면서 신자가 2,000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1950년대 말 성주본당에서 가천본당을 분리하여 임시본당이 된다. 엑베르토 신부는 1961년 4월 22일 가천본당 봉헌식을 준비하면서 새 본당의 초대주임으로 어릴 때 만주에서 그에 의해 영세받은 정국환 알로이시오 신부를 임명한다.

 

1964년 문경본당 주임 이태준 야고보 신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정 알로이시오 신부가 문경본당으로 이임되자 당시 66세 였던 엑베르토 신부는 12월 4일 가천본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가천본당에서 성탄시기에 6개 공소를 방문하는 등 열심이었고, 그 열정때문에 1965년 공소순방길에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1972년부터 1978년까지 공소가 많지 않았던 낙산(가실)본당 주임으로, 1978년부터 1984년까지는 왜관본당 공소였던 약목본당 주임으로 쉬지 않고 일했다. 당시 노트케로 볼프 총 아빠스와의 대화에서 본당을 포기하고 수도원에 전념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라는 문제가 제기되자 엑베르트 신부는 벌떡 일어나 발을 쾅쾅 구르며 "선교사는 선교하러 다니다가 신발을 신은 채 죽어야 합니다."라고 나가버린 일화는 한국 선교의 첫세대를 차세대와 구분짓는 일화다.

 

이후 약목본당 사목을 할 수 없게 되자 1984년 부산 분도병원 지도신부로 부임했고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왜관 수도원으로 돌아와 1986년 1월 26일 선종했다.

 

수륜공소는 1958년 정묵덕 신부와 이우석, 이분도, 이기광, 최데레사, 배록이 등에 의해 설립되었고 당시 신자 수는 약 70명 정도였다. 1975년 목조건물을 허물고 지금의 콘크리트 건물로 개축하였는데 왜관수도원의 알빈슈미트신부가 설계를 맡았고 내부에는 앙드레부통 신부의 벽화가 있다. 2019년 교세통계에 의하면 남자 26명, 여자 45명, 합계 71명의 신자가 있었다. 현재 공소 기능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나 내부는 잘 관리되고 있다.

 

 

 

 

<참고자료>

 

가천본당 건립과 공소사목을 위한 엑베르토 되르플러 신부의 헌신을 기록한 「분도통사(芬道通史)의 일부분이 가천성당 카페에 올라와 있다.

https://cafe.daum.net/kachun/BxmC/16

 

송호상, 수륜공소, 디지털성주문화대전

https://seongju.grandculture.net/seongju/toc/GC08401012

 

 

주소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참별로9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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