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기행/원주교구 37

영산성당 곤의골공소

곤의골공소는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 때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온 신자 세 가족이 이곳에 정착해 화전을 일구며 신앙을 지켰던 것이 시작이다. 공소가 위치한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는 골짜기가 여러 곳으로 갈라져 있어 잘 드러나지 않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인 병인박해(1866~1871년) 때도 피해를 입지 않았을 정도로 깊은 산골마을이다. 이런 지리적인 위치 덕분에 많은 교우들이 모여 교우촌을 형성하게 되는데, 신자들이 처음 살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는 이르게는 1839년 기해박해 때부터라고도 하고 1846년이나 1847년이라고도 한다. 여러 설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신앙이 소개된 아주 초기부터 신자들이 제법 큰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던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곳은 원주교구에서..

북평성당 삼화공소

삼화공소의 뿌리는 쇄운리공소다. 1930년대 몇몇 신자들이 당시 삼척군 쇄운리(현 동해시 쇄운동) 성황당골에 정착하여 옹기를 구우며 신앙생활을 시작한 곳이다. 이후 다른 신자들도 이곳으로 모여들어 80명이 넘는 큰 교우촌을 이루게 되었다. 1958년 북평에 본당이 건립되고 1972년 삼화공소가 설립되어 쇄운리공소는 영동지역 신앙의 고향으로 남게 되었다. 삼화공소가 설립되기 전 본당으로 가기 어려운 신자들은 쇄운리 배종근(토마스. 배은하 형제신부의 부친) 회장댁에서 공소예절을 보았다. 그러나 1960년대 삼화에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게 되어 신자수가 많아지면서 성전을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1972년 삼화공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고정된 미사장소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1978년 마침내 삼화공소 축복식을..

성내동성당 근덕공소

근덕공소는 1963년 11월 1일 낙성식을 올렸다. 당시에는 춘전교구에 속해 있어 춘천교구장 구 주교와 콜롬바노회 수녀들, 그리고 관민들이 참여하여 집전 강복식에 이어 미사를 올렸다. 총공사비 50만원 소요, 7월 19일 기공하여 10월 20일 준공되었다. 35평의 현대식 벽돌양옥의 아담한 모습으로. 삼척시 자료에 의하면 1956년 3월 10일 성내동성당에서 근덕공소를 설정하였다고 한다. 2017년 공소회장의 증언에 의하면 공소에 등록한 교인 수는 83명(남 38명, 여 45명)인데 2년 동안 성사에 참여하지 않은 냉담자가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사직동성당은 삼척본당 관할 공소에서 1966년 10월 5일 사직동본당으로 승격되어 콜롬반 외방선교회의 설 어네스트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주보 ..

사직동성당 용화공소

여지껏 제법 많은 공소 이야기들을 써왔지만 용화공소에 관해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정보가 없다. 못찾은 걸 지도 모르지만. 그저 검색을 하면 삼척 지역 피서지 인근 미사 참례를 권하면서 사직동성당과 호산공소, 그리고 용화공소를 언급하는 정도다. 심지어 본당인 사직동성당 홈페이지에서도 관련 정보는 찾아 보기 힘들었다. 용화공소는 용화해수욕장에 접한 바닷가 마을에 있어서 공소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멋진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아담한 슬레이트 지붕 1층 건물이 용화공소이다. 내부는 잠겨 있어 들어가 보진 못했다. 우편함 옆 블라인드의 십자가가 공소임을 말해준다. 담벼락에도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누구이 작품인지는 알 수 없다. 옆으로 돌아가 보면 2018년 9월에 하남 정하상 바오로 성당이라 씌여 있는데, 이..

사직동성당 호산공소

공소가 위치한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는 강원도 최남단 지방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부호리와 재산리를 통합하면서 지명에서 한 글자씩 따서 호산리로 부르게 되었다. 호산공소는 1960년 7월 4일 성내동성당 소속으로 설립되었고 1964년 경당을 건립하고 1967년 10월 원주교구 설립을 기점으로 사직동성당(1966년 설립) 소속 공소가 된다. 한때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수녀가 파견되었으며 선교사가 상주하여 공소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었다. 2007년 6월 9일 침실, 샤워식, 강당, 부엌을 갖춘 연건평 60평 규모의 교육관이 만들어져 피정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호산공소(湖山公所)는 1961년 울진본당 골롬반 신부에 의해 지어졌으며, 그 후 울진이 경상북도로 편입되고 1..

장성성당 석포공소

석포공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에 있다. 행정구역상 안동교구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본당과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원주교구에 편입되어 있는 것이다. 석포공소의 시작은 석포제련소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들은 80년 초반부터 두 세 가구 신자들이 제련소 직원 아파트에서 공소예절을 시작하다가 1982년 낡은 가정집을 구입해 손수 일하고 제련소로부터 자재를 보조받으면서 형편 닿는내로 1백만원을 부담하여 공소로 단장했다. 이 낡은 기와집은 제련소의 한 미신자 엄준일이 어린 아들을 잃은 아픔을 기도로 극복해나가는 아내(허 루시아)의 신앙에 감동, 죽은 아들의 교육보험금 60만원을 기부한 돈으로 구입했다. 이렇게 세워진 공소가 주일미사 참례자 30여 명정도로 커지자 공소를 이전 신축하기 위해 적립금 120만원을..

장성성당 철암공소

201년 발간된 장성본당 50년사 제4부 장성성당 공소편 철암공소에 실린 내용 가운데 중요한 것들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1947.11 : 강릉본당 신부에 의해 전교가 시작되었으며 6.25이후부터는 백산, 철암, 동점에 산재해 있는 교우들이 모여 공소예절을 지냈다. * 1961 : 장성본당 설립과 함께 엄지랑 분도 전교사를 주재시키며 본격적인 전교 시작 * 1969.9.10 : 철암 강당 착공(42평) * 1 969.12.3 : 철암 강당 축성식. 주보 성프란치스꼬 사베리오 * 1 970.11.15 : 숙소 신축(흙 벽돌 12평) * 1971.12.31 : 교세 남자 182명 여자 200명 계 382명 성사 183명 연중 영성체 3,424명 * 1973 5.31 : 공소 성모상 건립 지학순 주교 축..

황지성당 상동공소

1952년 10월 28일 영월성당 관할 상동공소로 설립되었다. 신자들의 집을 돌아가며 공소예절을 보다가 점차 신자가 늘어나자 1955년 9월 현 공소 건너편에 있던 여관을 매입하여 경당으로 꾸몄고 당시 신자수는 198명에 이르렀다. 1959년 2월 본당으로 승격하였고 영월성당의 주임신부였던 이영섭(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가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10월 21일 새 성당을 짓고 봉헌식을 올렸다. 초대 주임이었던 이영섭 신부는 가방 하나 들고 태백지방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세례와 미사 등 성사를 베풀고, 탄광지 선교에 헌신하며 성당 신축과 성장에 큰 역할을 하였다. 성당이 자리 잡고 있는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는 일제강점기에 중석(텅스텐) 광산이 개발된 후 대한중석(주) 상동광업소가 들어서며 ..

사북성당 증산공소

증산(甑山)의 증((甑)은 떡 따위를 찌는 '시루'라는 뜻이다. 마을을 둘러싼 여러 봉우리 가운데 제일 중앙에 시루봉이 있어 그것을 한자로 표기하여 생긴 이름이다. 이 지역 탄광개발과 함께 수송을 위한 철로가 개설되는데, 증산은 태백선과 정선선의 분기점이어서 무척 활기를 띄었다. 1961년 정선본당에서 남면으로 파견된 전교회장 홍순목 루가를 비롯한 신자들은 교우가 1명 뿐이었던 증산에도 복음을 전파하며 공소설립에 크게 기여한다. 신자가 늘어나면서 1968년 가옥을 매입하여 공소로 축복식을 거행하였고, 1969년에는 35명의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였다. 1972년 공소강당을 증축하여 사용하다가 공소가 너무 낡고, 또 도시계획에 공소부지가 포함되자 새로 공소부지를 마련하고 새로운 강당을 신축하여 1978년 ..

사북성당 남면공소

남면공소는 '정선아리랑'의 발상지인 정선군 남면에 있다. 남면공소에 대한 자료도 거의 찾을 수 없었고, 단편적으로 있다 하더라도 조금씩 차이가 있어 정확한 정보는 확인이 어렵다. 우선 남면공소의 설립시점이다. 1961년 정선본당에서 전교회장으로 있던 홍순목(루가) 회장이 남면공소로 전출되어 전교하면서 시작되었다 한다. 처음에 일본인 주재소가 있던 작은 집을 공소로 사용하다가 1971년 현 위치에 단층 벽돌 강당 20평을 완공했지만 주변 탄광이 문을 닫고 지역 주민들이 떠나 신자수가 크게 줄어 공소가 위기를 겪었다. 또다른 기록으로는 1950년 11월 20일 설립되었다는 것. 설립 당시는 정선본당 관할이었고 1963년 함백성당으로, 1984년에 사북성당으로 이관되었다고 한다. '설립시기'이라 함은 그동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