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기행/춘천교구 39

운천성당, 운천성당 양문공소

운천성당(雲川聖堂) 1962년 3월 10일 성 요한 23세 교황은 한국 교회 교계 제도를 설정함으로써 서울대목구를 비롯한 한국의 모든 대목구가 정식 교구가 된다. 이에 1955년에 춘천대목구가 춘천교구가 됐다. 이후 1969년 5월 한국 교회는 교구 관할 구역 조정이 일어났는데, 포천군과 가평군이 춘천교구 관할로 편입되어 청평, 가평본당이 춘천교구에 소속되게 된다.  이후 1970년 11월 15일 년 포천본당 소속이던 운천공소가 박도마 주교 명의로 본당으로 승격된다. '운천(雲川)'은 '구름내'라는 우리말의 한자음 표기로 한탄강 맑은물에 구름이 비치면 마치 구름이 물속에 잠긴듯해 이 지역을 운천이라 불렀다. 당시 운천본당 소속 공소였던 지포리공소도 1991년 8월 16일 갈말본당으로 승격하였다.  199..

노암동성당 금광리공소

금광리공소는 춘천교구의 성지로 1887년에 개설되어 영동지역 천주교 모태를 이룬다. 한때 이 지역 전교 거점 본당으로 ,1921년에는 양양본당과 함께 영동지역 두 본당 중 하나였다. 영동지역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흥선대원군 시절의 병인박해(1866년)가 계기가 되었다. 금광리공소는 서울, 경기도, 경상도 등지에서 박해를 피해 피난 온 이들이 교우촌을 형성하여 1887년에 건립됐다. 금광리공소 본당이 건립된 것은 1921년 12월 2일이며 당시 신자 수는 100여 명으로 전해진다. 영동 지역 공소에 새로운 변화가 있게 된 것은 1900년이다. 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1854~1933) 주교가 이 지역을 방문(1900년 11월 23일)하면서 박해 이후 처음으로 견진성사를 베푼 것이다. 당시 금광..

주문진성당 삼산공소

1956년부터 행정공소의 김창석, 김종호 형제를 비롯한 교우들이 삼산까지 전교하여 차기환(바오로)을 입교시켰고 1957년 4월 20일 부활주일에 26명의 첫 영세자가 났다. 1959년 7월 27일 최창규 신부에 의해 목조 18평의 삼산공소를 축성하였다. 공소 건물이 없을 당시 묘제(묘치)초등학교 건물을 빌려 미사를 드렸다. 삼산의 야산을 구입하여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신자들이 직접 운송하였고, 당시 행정공소 회장이던 김창석이 감독을 맡았다. 초기에 영세자는 40명 정도였고 예비자가 100여 명 정도였다. 삼산공소가 없을 때 삼산리 신도들은 주일에 주문진성당으로 가기 위해 새벽 2시에 일어나 장덕리골을 6~7시간 걸어다녀야 했다. 주문진성당,주문진본당75년사,1998 디지털강릉문화대전, 삼산공소에서 재인용..

주문진성당 행정공소

행정공소를 "옹기마을의 신앙유산"이라 묘사한다. 그런데 갑자기 박해시절 교우들이 주요 생계수단으로 하필 옹기점을 선택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숨어 하기 좋은 일이어서 그랬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그 이후(1970년대) 까지 이어진 건 어떻게 설명할 건지. 아무튼 그저 기계적으로 받아들였을 뿐이지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전주교구에서 발간한 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생계수단으로 옹기점을 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투입자원 대비 고이윤 2. 군역 및 잡역 면제 3. 교우 공동체에서 노동력 해결 4. 양반 출신 교우 신분 위장 5. 신앙활동 위장 하지만 70년대 이후 플라스틱 제품이 일반화되면서 질그릇(옹기) 수요가 크게 줄었고, 산림녹화를 위해 입산..

주문진성당 인구공소

인구공소는 1958년 12월에 설립되었다. 제법 오래된 공소임에도 불구하고 상세 연혁을 찾아볼 수가 없고 설립 년도만 춘천교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인구공소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좌우로 죽도해수욕장과 인구수욕장이 있다. 그래서 인지 인구공소를 검색하면 공소 역사 관련 글은 없고 피서지 인근성당 안내 기사에만 등장한다. 이정표를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성모상이 있고 이어 넓은 앞마당과 공소 건물이 나온다. 규모나 형태로 미루어 손님맞이 설비가 갖춰져 있는 것 같다. 수련회나 피정 및 다른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면 주문진 성당으로 문의해보기 바란다. 공소신자들이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고 있으며 선교사도 상주해 있다 한다. 주문진성당 홈페이지는 따로 없고, 다음 카페가 개설되어 있다...

양양성당 현북공소

양양 현북공소는 1870년대 교우촌이며 양양 지방 초기의 한재공소와 명지골 공소를 이어받은 공소로, 춘천교구 사적지이다. 이곳에 교우촌이 만들어진 것은 1877년 무렵 당시 명지리(현 현북면) 김영집과 두 아들이 신앙 공동체를 이루면서 시작된다. 이들의 활동으로 교우들이 꾸준히 증가했다. 함경도 교회사 기록에 따르면 1894~5년 안변본당 4대 주임신부(불라두) 재임 시 지방을 순방한 후 한재공소(현북면 대치리)를 설립했다고 한다. 그 후 안변본당을 내평으로 옮긴 후 5대 주임신부(그리사르) 재임 시 1899~1900년 사이에 명지골공소(현북면 명지리)가 설립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한재공소가 1894~1899까지, 그 후는 명지골공소로 이어져 오다가 1921년 양양본당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신앙생..

간성성당 교암공소

교암공소는 1954년 속초 동명동본당 소속 공소로 설립되었지만 1958년 간성본당이 설립되면서 간성본당 소속으로 편입됐다. 1966년 공소 건물을 건축하여 교암리를 비롯한 토성면 지역 신앙 보금자리로서 역할을 해왔다. 1966년까지 미사를 봉헌해왔으나 교통 발달로 신자들이 본당 미사에 참례하면서 방치됐다. 2014년 공소를 선교 거점으로 활용하기로 뜻을 모은 공소 신자들이 기금을 모아 2015년 2월 5일 공사를 완료하고 춘천교구장 김윤회 주교 주례로 간성본당 이지철 주임신부와 영북지역 사제단 및 신자 90명이 참여하여 축복식을 거행했다. 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보니 기도하는 분이 계신다.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잠시 인사만 드리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온다. 길 건너 멋진 바다뷰가 펼쳐진다. 교암항,..

간성성당 학야공소

학야공소의 본당인 간성성당은 고성군 간성읍에 있다. 2003년 7월 3일 새벽 누전으로 전소되어 전국에서 모인 성금으로 2005년 5월 5일 새성당 봉헌식을 가진 아픔을 갖고 있다.(아래 사진 참조.) 강원도 고성군은 옹진군, 철원군과 함께 남북한에 모두 존재하는 군이며, 고성은 남북이 휴전선을 경계로 절반 정도를 나눠 가졌다. 군 로고로 금강산을 그려넣을 정도로 금강산의 분단 전 영역의 남부를 차지하고 있고 금강산으로 북한과 연결된다 한다. 재미 있는 건, 경상남도에도 고성군이 있어서 자치단체 도메인을 경남 고성군(www.goseong.go.kr)이 선점하는 바람에 강원도 고성군 도메인은 gwgs.go.kr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두 군 사이에 우호교류 협정이 채결되어 있다 한다. 뭐, 알쓸신..

원통성당 용대공소

용대공소도 설립날짜 이외의 정보는 찾기 힘들다. 1997년 7월 설립되었고 천도리공소와 더불어 원통성당 관할 공소다. 용대공소를 검색하니 뜬금 없이 산악회 집결지로 이용되는 모양이다. 하긴 용대공소의 위치가 설악산 자락이고 용대리 자체가 워낙 관광지기도 해서 그런걸까? 특히 용대리는 황태덕장이 몰려 있는 곳이다. 나만 해도 강원도 오가는 길이 있으면 부근 용바위식당 황태국을 꼭 먹고 가니까.(맛집으로 워낙 유명하다.) 원통본당 이상덕 선교사에 의하면 용대공소는 농촌지역이지만 신자들 대부분이 황태 덕장 관련 일을 하거나 식당, 팬션을 운영하고 있으며, 신자 수는 2022년 현재 20명 정도라 한다. 원통본당의 주일 미사 첫 시작은 오전9시 용대공소에서 봉헌되고, 11시 원통본당에서 주일 낮 미사가, 그리고..

원통성당 천도리공소

1967년 1월 설립된 천도리공소는 반 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낡고 단열도 제대로 되지 않아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어 공소를 고쳐 지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 됐다. 2억 원이 넘는 공사비는 공소 신자들이 10여 년 동안 모은 기금과 전임 홍천본당 주임 이영주 신부, 원통본당 신자들, 주임 박우성 신부와 동기 신부들이 후원한 기금으로 마련했으나 아직 빚이 남아 있단다. 새로 지은 공소는 180제곱미터 넓이로 성당과 사제관, 화합실 등을 갖췄다. 공사 기간은 3개월. 2016년 6월 5일 새 단장을 마치고 현지에서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가졌다. 축복 미사에는 교구 사제, 신자 등 300명이 함께했다. 2016년 현재 공소신자는 50명이다. 천도리공소는 1974년에는 인제본당에 속해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