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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성당 삼청공소 왜관 지역에는 1908년 이문 베난시오가 이주해 옴으로써 최초의 천주교 신자가 존재하게 되었고, 이후 김치견 필립보, 이만원 요한, 정재문 안드레아, 서석배 프란치스코 가족 등이 이주하면서 1920년을 전후한 시기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가실성당 소속 공소였던 왜관공소는 1920년 김치견의 집을 공소로 이용하다가 1923년 정재문의 본가(초가 3칸)을 공소로 사용하면서 정식 공소가 되었다. 정재문은 왜관공소를 본당으로 발전시킬 계획을 가지고 1927년 왜관동에 1,700평의 대지를 매입하여 이듬해 2월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11월에 90평 규모의 성당을 준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가실본당의 투르뇌( Tourneux, Victor Louis 呂東宣) 신부가 공사비 일부를 부담하는등.. 2026. 6. 11.
신동성당 연호공소 박해시절 신동성당 인근 신나무골을 중심으로 교우촌이 형성되면서 1885년 로베르(Achille Paul Robert, 金保祿, 1853~1922) 신부가 신나무골 이이전 안드레아 집에 정착하여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을 순회 전교하였다. 이후 보두네(Francois Xavier Baudounet, 尹沙勿, 1859~1915) 신부와 조조(Moyse Jozeau, 趙得夏, 1866~1894)신부, 파이야스(Camillus Cyprien Pailhass, 河敬朝, 1868~1903) 신부 등이 왜관 가실에서 활동하였다. 신동성당은 1968년 2월 1일 왜관성당에서 분리 신설되었는데, 한국전쟁 후 베네딕도회 신부들이 설립한 신동공소에서 시작되었다. 1904년 경부선 철도 개통으로 신나무골에서 대구 방향 신동역 .. 2026. 6. 8.
신동성당 하빈공소 신동성당은 1968년 2월 1일 왜관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다. 신동본당은 유서 깊은 두 공소인 신나무골공소와 웃점공소에서 시작되었는데, 신나무골공소는 대구 계산동본당의 첫 성당 터이자 영남교회의 선교 요람지이다. 웃점공소에 신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860년 이후부터이며 1932년 경에는 60여 명의 신자들이 교우촌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후 웃점공소는 가실성당에서 왜관성당으로 이관되었고 이곳 공소신자들은 신동에 공소를 마련하고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한국전쟁 이후 베네딕도회가 왜관에 정착한 것을 계기로 신나무골공소와 신동공소의 병합이 의논되자 공소 신자들은 1959년 1월 지금의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2월 6일 신동공소를 완공하여 왜관수도원장 비테를리(Bitterli, 李聖道) 몬시뇰의 집전.. 2026. 6. 6.
가실성당, 가실성당 하산공소 가실성당가실성당이 있는 칠곡군 낙산리는 왜관 낙동강 가에 있는 작은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여 대구, 안동, 부산 방면으로 오갈 수 있는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이곳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1784년 한학을 공부하던 창령 성씨 집안의 성섭이란 학자가 만년에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이 시초라 전한다. 그의 증손자 성순교는 1860년 경신박해 때 상주에서 순교했다. 1886년 한불수호조약 이후 선교의 자유가 허용된 이래 1894년 프랑스 파리외방선교회 하경조(Camillus Palihasse, 河敬朝) 신부가 칠곡 신나무골에 도착하여 신자들의 도움으로 가실에 자리잡고 1895년 6월 11일 칠곡 가실성당이 설립되었다. 조선교구로는 11번째, 대구교구에서는 계산성당 다음으로 설립된 성당이었다. 지.. 2026. 5. 25.
현풍성당 인안(개진)공소 1935년경 현풍면의 윤일권 베드로 등을 중심으로 설립된 현풍공소는 계산동본당과 남산동본당을 거쳐 1938년부터 화원본당 관할 공소였다. 공소 설립 후 인근의 고봉공소와 통합되면서 그곳의 신자들도 현퐁공소로 공소예절을 보러 왔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로 공소 강당이 불타 공소 신자들은 화원본당의 서정도 베르나르도 신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초가를 짓고 임시 공소로 사용하다가 전쟁 후인 1960년에는 공소 신자들의 노력과 화원본당 박재수 요한 신부의 도움을 20평 규모의 목조 건물 공소를 신축한다. 이후 신자 수가 증가하여 1960년대 후반 대구대교구에서 현풍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여 1969년 1월 29일 현풍본당이 설립되고 초대 주임으로 김영옥 신부가 부임하였다. 이상이 간력한 현풍본.. 2026. 5. 22.
고령성당 백산공소 1897년 초 김보록 로베르 신부가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899년 계산성당을 준공함으로써 대구 및 경상북도 지방의 복음전파를 위한 토대를 구축한다. 당시 계산성당에서 김만득 이냐시오 이단연 마리아 부부가 1931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로 이주하면서 고령 지역에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1936년에는 김옥출 도마, 정말순 요안나 부부가 고령으로 이주해오는 등 신도가 늘어나면서 1940년 김만득의 집을 고령공소로 정하게 된다. 고령 지역의 천주교가 새롭게 발전하게 된 것은 1955년 화원본당의 박재수 요한 신부가 고령지역으로 부임하면서부터인데 그는 1958년 그동안 교회 소유의 공소가 없었던 고령지역에 처음으로 공소를 마련하였고 이를 계기로 고령군 곳곳에 공소가 생겨나기 시작.. 2026. 5. 21.
고령성당 박곡공소 1897년 초 김보록 로베르 신부가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899년 계산성당을 준공함으로써 대구 및 경상북도 지방의 복음전파를 위한 토대를 구축한다. 당시 계산성당에서 김만득 이냐시오가 1931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로 이주하면서 고령 지역에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1936년에는 김옥출 도마, 정말순 요안나 부부가 고령으로 이주해오는 등 신도가 늘어나면서 1940년 김만득의 집을 고령공소로 정하게 된다. 고령 지역의 천주교가 새롭게 발전하게 된 것은 1955년 화원본당의 박재수 요한 신부가 고령지역으로 부임하면서부터인데 그는 1958년 그동안 교회 소유의 공소가 없었던 고령지역에 처음으로 공소를 마련하였고 이를 계기로 고령군 곳곳에 공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 2026. 5. 20.
고령성당 운수공소 1897년 초 김보록 로베르 신부가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899년 계산성당을 준공함으로써 대구 및 경상북도 지방의 복음전파를 위한 토대를 구축한다. 당시 계산성당에서 김만득 이냐시오가 1931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로 이주하면서 고령 지역에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1936년에는 김옥출 도마, 정말순 요안나 부부가 고령으로 이주해오는 등 신도가 늘어나면서 1940년 김만득의 집을 고령공소로 정하게 된다. 고령 지역의 천주교가 새롭게 발전하게 된 것은 1955년 화원본당의 박재수 요한 신부가 고령지역으로 부임하면서부터인데 그는 1958년 그동안 교회 소유의 공소가 없었던 고령지역에 처음으로 공소를 마련하였고 이를 계기로 고령군 곳곳에 공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958년 .. 2026. 5. 20.
고령성당, 고령성당 덕곡공소 고령성당1897년 초 김보록 로베르 신부가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899년 계산성당을 준공함으로써 대구 및 경상북도 지방의 복음전파를 위한 토대를 구축한다. 당시 계산성당에서 김만득 이냐시오가 1931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로 이주하면서 고령 지역에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1936년에는 김옥출 도마, 정말순 요안나 부부가 고령으로 이주해오는 등 신도가 늘어나면서 1940년 김만득의 집을 고령공소로 정하게 된다. 고령 지역의 천주교가 새롭게 발전하게 된 것은 1955년 화원본당의 박재수 요한 신부가 고령지역으로 부임하면서부터인데 그는 1958년 그동안 교회 소유의 공소가 없었던 고령지역에 처음으로 공소를 마련하였고 이를 계기로 고령군 곳곳에 공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가.. 2026. 5. 20.
선남성당 상신공소 1950년 성주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설립된 성주본당은 2000년 설립 50주년을 계기로 관할 공소를 통합하여 선남 지역에 본당을 신설하기로 결정하고 7월 8일 광영공소를 선남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선남본당의 설립과 함께 성주본당으로부터 관할이 이전된 공소가 도흥, 명포, 문방, 상신, 신부, 용암공소 등 6개소였고 당시 교세통계에 따르면 도흥공소 147명(남 64, 여 83), 명포공소 94명(남 37, 여 57), 문방공소 21명(남 6, 여 15), 상신공소 15명(남 7, 여 8)으로 파악되었다. 현재 모든 공소가 운영을 중단한 상태이며 문방공소는 터만 남아 있다. 상신공소의 설립과 운영중단 시기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2006년 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운영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지리적으로 선.. 2026. 5. 18.
선남성당 용암공소 1950년 성주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설립된 성주본당은 2000년 설립 50주년을 계기로 관할 공소를 통합하여 선남 지역에 본당을 신설하기로 결정하고 7월 8일 광영공소를 선남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선남본당의 설립과 함께 성주본당으로부터 관할이 이전된 공소가 도흥, 명포, 문방, 상신, 신부, 용암공소 등 6개소였고 당시 교세통계에 따르면 도흥공소 147명(남 64, 여 83), 명포공소 94명(남 37, 여 57), 문방공소 21명(남 6, 여 15), 상신공소 15명(남 7, 여 8)으로 파악되었다. 현재 모든 공소가 운영을 중단한 상태이며 문방공소는 터만 남아 있다. 용암공소는 1971년 11월 25일 설립되었고(대구교구 100년사 본당사) 중단된 시점은 확인할 수 없었다. 도흥, 명포공소와 함께 .. 2026. 5. 18.
선남성당 명포공소 명포공소 역시 성주성당에서 선남성당을 분립할 때(2000년) 관할이 이전된 공소다. 이전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폐쇄된 것으로 보이며, 공소의 설립을 1967년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공식문헌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왜관수도원의 알빈슈미트 신부가 설계했고 내부에 앙드레부통 신부의 벽화가 있다. 선남성당 명포공소 경북 성주군 선남면 본성로 509 2026.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