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성당 연호공소
박해시절 신동성당 인근 신나무골을 중심으로 교우촌이 형성되면서 1885년 로베르(Achille Paul Robert, 金保祿, 1853~1922) 신부가 신나무골 이이전 안드레아 집에 정착하여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을 순회 전교하였다. 이후 보두네(Francois Xavier Baudounet, 尹沙勿, 1859~1915) 신부와 조조(Moyse Jozeau, 趙得夏, 1866~1894)신부, 파이야스(Camillus Cyprien Pailhass, 河敬朝, 1868~1903) 신부 등이 왜관 가실에서 활동하였다. 신동성당은 1968년 2월 1일 왜관성당에서 분리 신설되었는데, 한국전쟁 후 베네딕도회 신부들이 설립한 신동공소에서 시작되었다. 1904년 경부선 철도 개통으로 신나무골에서 대구 방향 신동역 ..
2026. 6. 8.
선남성당 상신공소
1950년 성주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설립된 성주본당은 2000년 설립 50주년을 계기로 관할 공소를 통합하여 선남 지역에 본당을 신설하기로 결정하고 7월 8일 광영공소를 선남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선남본당의 설립과 함께 성주본당으로부터 관할이 이전된 공소가 도흥, 명포, 문방, 상신, 신부, 용암공소 등 6개소였고 당시 교세통계에 따르면 도흥공소 147명(남 64, 여 83), 명포공소 94명(남 37, 여 57), 문방공소 21명(남 6, 여 15), 상신공소 15명(남 7, 여 8)으로 파악되었다. 현재 모든 공소가 운영을 중단한 상태이며 문방공소는 터만 남아 있다. 상신공소의 설립과 운영중단 시기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2006년 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운영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지리적으로 선..
2026. 5. 18.
선남성당 용암공소
1950년 성주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설립된 성주본당은 2000년 설립 50주년을 계기로 관할 공소를 통합하여 선남 지역에 본당을 신설하기로 결정하고 7월 8일 광영공소를 선남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선남본당의 설립과 함께 성주본당으로부터 관할이 이전된 공소가 도흥, 명포, 문방, 상신, 신부, 용암공소 등 6개소였고 당시 교세통계에 따르면 도흥공소 147명(남 64, 여 83), 명포공소 94명(남 37, 여 57), 문방공소 21명(남 6, 여 15), 상신공소 15명(남 7, 여 8)으로 파악되었다. 현재 모든 공소가 운영을 중단한 상태이며 문방공소는 터만 남아 있다. 용암공소는 1971년 11월 25일 설립되었고(대구교구 100년사 본당사) 중단된 시점은 확인할 수 없었다. 도흥, 명포공소와 함께 ..
2026.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