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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기행/대구대교구

현풍성당 인안(개진)공소

by photomaker.anon 2026. 5. 22.

 

1935년경 현풍면의 윤일권 베드로 등을 중심으로 설립된 현풍공소는 계산동본당과 남산동본당을 거쳐 1938년부터 화원본당 관할 공소였다. 공소 설립 후 인근의 고봉공소와 통합되면서 그곳의 신자들도 현퐁공소로 공소예절을 보러 왔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로 공소 강당이 불타 공소 신자들은 화원본당의 서정도 베르나르도 신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초가를 짓고 임시 공소로 사용하다가 전쟁 후인 1960년에는 공소 신자들의 노력과 화원본당 박재수 요한 신부의 도움을 20평 규모의 목조 건물 공소를 신축한다. 이후 신자 수가 증가하여 1960년대 후반 대구대교구에서 현풍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여 1969년 1월 29일 현풍본당이 설립되고 초대 주임으로 김영옥 신부가 부임하였다.

 

이상이 간력한 현풍본당의 설립 과정인데, 김 신부 부임 직후 고령본당의 관할 공소였던 개진공소(현 인안공소)를 인계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인안공소의 원래 이름은 개진공소였고 고령본당 관할 공소였다. 행정구역상으로 개진공소는 고령군 개진면 인안리이며 현풍성당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이지만 두 곳과의 거리가 4.8Km에 불과하기 때문에 관할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인안공소와 고령본당과의 거리는 19Km다.) 현풍본당이 건립되면서 인근에 있던 고봉, 현풍, 논공,유가, 금동공소 등이 폐쇄되었다.

 

인안공소에 관한 세부적인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현풍본당 설립 당시 고령본당 소속 개진공소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개진공소는 현풍본당으로 소속이 이관된 후 1973년 4월 29일 신축 축성식을 가졌고, 이때도 여전히 개진공소로 불렸다. 어느 시점에서 인안공소가 됐는지, 언제 폐쇄됐는 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아마도 본당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고, 대구라는 대도시 바로옆에 위치해 있어 농촌인구의 유출이 유독 심해서 폐쇄 수순을 밟지 않았나 싶다.

 

인안공소는 여타 공소와는 달리 전문가의 설계를 거친 제대로 된 공소로 보인다. 원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1973년에 신축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너무 세련된 공소다. 종탑에서 알빈슈미트신부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설계한 사람이 알빈 신부의 공소들에서 영감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한 지리적, 인구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이 공소가 다시 활성화될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사람에게도 생로병사가 있듯 공간 역시 생성과 소멸이 당연하다고 제법 쿨한 척 말하지만 이런 유산들이 잊혀지는 걸 보는 것은 아픔일 수 밖에 없다. 실체가 있음에도 잊혀진다는 건 죽음 보다 잔인하다.

 

 

 

 

<참고자료>

 

한국가톨릭대사전, 현풍본당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6921

 

엄진성, 현풍성당, 디지털달성문화대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dalseong.grandculture.net/dalseong/toc/GC40801241?requestBy=%ec%a0%84%ea%b5%ad

 

김천유 안드레아, 본당소개>현풍성당 연혁, 현풍성당 홈페이지, 2010.05.21

https://cafe.daum.net/dghpcc/Jkv3/9?q=%ED%98%84%ED%92%8D%EC%84%B1%EB%8B%B9%20%EA%B0%9C%EC%A7%84%EA%B3%B5%EC%86%8C&re=1

 

 

현풍성당 인안공소 경북 고령군 개진면 인안길 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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