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소기행/춘천교구

거두리성당 곰실공소

by photomaker.anon 2024. 3. 11.

한국 가톨릭교회가 세계 교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외국인 선교사들의 전교없이 자발적으로 신앙공동체를 설립한 것이고, 이 전통을 답습, 유지한 곳이 춘천교구다.

이 지역의 신앙을 이야기할 때 엄주언(마르티노, 1872~1995)이란 인물과 그의 행적을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춘천시 동면에서 한학에 열심이었던 그는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살던 체반 장수를 통해 가톨릭 교리서인 '천주실의'와 '주교요지'를 읽고 곧바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다. 큰 형과 함께 천진암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면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춘천 지역 가톨릭 선교의 대부가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천주학쟁이라 냉대를 받지만 동내면 고은리의 폐가를 사서 화전을 일구며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사람들을 모아 성경과 교리를 가르쳤다. 남에겐 겸손하고 자신에게 늘 엄격했다. 장티푸스가 돌아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가족들 조차 방치한 시신을 거두어 정성스럽게 염을 하고 뒷산에 매장해주었다. 이러한 그의 행동에 많은 주민들이 감동하고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춘천지역에 처음으로 생긴 가톨릭 신앙공동체가 바로 곰실공소다.

엄회장은 곰실의 교우수가 300명 넘게 늘어나자 성직자 영입을 추진한다. 신부를 모시기 위해 직접 사제관을 짓고 서울 명동대성당과 강원도 유일의 본당이었던 풍수원성당을 수차례 방문해 뮈텔 주교와 정규하 신부에게 성직자 파견을 요청했다. 1920년 9월 사제품을 받고 풍수원본당 보좌로 임명된 김유용(필립보) 신부가 춘천지역으로 파견되면서 곰실공소는 춘천교구의 모태가 된다.

김 신부와 엄 회장은 교세 확장을 위해 춘천 시내에 성당을 지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엄 회장 주도로 곰실 신자들이 성전 건립 기금을 조성한다. 그 결과 1928년 춘천 약사리 418번지 김영식의 함석집을 사서 고쳐 성당으로 사용하고 본당을 이전하는데, 이때 교우 수가 600여명을 헤아렸다. 엄 회장은 이후 춘천지목구장으로 부임한 퀸란 신부와 함께 춘천 약사리 도토리밭을 사서 성당을 짓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성당이다.

엄주언 회장은 이렇게 춘천 지역 가톨릭 전교의 대부로서, 죽림동 주교좌본당의 창설 공로자로서, 그리고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춘천교구민들에게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있다. 춘천교구의 '우리의 뿌리'에서 "엄주언을 중심으로 곰실공소에서 태동한 춘천의 천주교회가 국지적이고 한정적인 사목활동에서 춘천의 전 지역을 공동체로 하는 본격적인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곰실'은 '고은리(古隱里)'의 옛 지명이다. 곰실은 '뒷쪽에 있는 마을' 또는 '큰 산, 신성한 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곰실공소는 6.25전쟁 때 소실되는 수난을 겪었다. 춘천은 전쟁 발발 다음날인 1950년 6월 25일 인민군의 집중 포격으로 초토화됐고, 이 때 다 지은 죽림동 주교좌 성당도 파괴됐다. 당시 곰실공소에는 인민군 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1951년 5월 반격에 나선 유엔군이 곰실공소를 폭격해 다시 한 번 파괴된다. 오늘날 곰실공소는 인민군에게 피랍돼 압록강 중강진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퀸란 주교가 돌아와 새롭게 지은 건물이다. 제6대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가 2009년 이 건물을 다시 지었다.

장익 주교가 중창한 곰실공소는 소박하고 단출하나 속은 탄탄하다. 공소 내부는 기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제단 중앙 십자가는 김혜림(베아타) 작가의 작품이다. 제단과 독서대는 김겸순(마리 테레시타, 노틀담수녀회) 수녀가 디자인했다.

곰실공소에는 수많은 순례자가 찾아오는 곳이다. 엄주언 회장과 옛 신앙 선조들을 기억하고 본받고자 기도한다. 곰실공소는 신앙의 향기를 지닌 아름다운 꽃 같은 존재이다.
 
 

 
 
 
<참고자료>

 

가톨릭평화신문, [공소] 11. 춘천교구 곰실공소, 2023.03.22
https://news.cpbc.co.kr/article/849408
 
 

 

 
 

'공소기행 > 춘천교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무숲성당 실레마을공소  (0) 2024.03.14
샘밭성당 발산공소  (0) 2024.03.12
강촌성당 광판공소  (0) 2024.03.11
강촌성당 추곡공소  (0) 2024.03.11
가평성당 상색공소  (0) 2024.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