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북부의 본당과 공소의 생성과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 교구 변화과정을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 1831년 9월 9일 : 교황 그레고리오 16세 조선대목구 설정
* 1911년 4월 8일 : 교황 비오 10세 조선대목구를 경성대목구와 대구대목구(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관할)로 나눔.
* 1952년 7월 6일 : 왜관지역을 중심으로 상주, 문경, 김천, 금릉, 선산, 성주, 칠곡 지역 사목구역에 대해 안정적인 관리 체계를 갖추기 위해 왜관 수도원 디모테오 비테를리 신부에게 해당 지역의 사목권을 위임함으로써 왜관감목대리구 설정.
* 1962년 3월 10일 : 대구대목구에서 대구대교구로 승격
* 1969년 5월 29일 : 안동교구 신설
* 1986년 3월 1일 : 왜관감목대리구가 공식적으로 해체되고 관할 본당들은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로 이관됨.
따라서 1952년~1986년까지 위지역의 사목은 왜관수도원이 주도하였기 때문에 1950~60년대 설립된 이 지역의 본당과 공소는 왜관수도원의 역할이 지대하다. 교회 설계로 유명한 알빈 슈미트 신부와 벽화를 남긴 앙드레부통 신부의 작품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남지방은 박해를 피해 산간으로 피신한 신자들을 돌보기 위해 다블뤼, 최양업, 리델 신부가 신자부락을 찾아 전교할 때까지 한티(칠곡 지천면 연화동)에서 전교하였다. 그로부터 30리 거리의 신나무골 교우들이 한티공소에서 성사를 보았으며 경상도 지역 담당자로 1866년 김보록(로베르토, 1853~1922) 신부가 정해졌으나 외국인 거주제한이 있어 대구읍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대구로부터 60리 떨어진 신나무골에서 체류(1866~1888)하면서부터 이곳이 대구교구 발전의 요람이 된다.
경북지역의 본당과 공소들의 뿌리는 낙산(가실)본당(1894년)이다. 여기서 분립된 김천 황금동본당(1902년)을 거쳐 평화본당(1958년)과 지례본당(1968년)이 이 지역의 공소를 관할하며 공소의 설립과 소속이 조정된다. 또한 왜관본당(1928년)에서 분립된 성주본당(1950년)과 가천본당(1961) 등이 성주지역의 공소를 관할하면서 소속이 조정된다.

왜관성당이 창설되었을 때의 관할공소와 변천은 다음과 같다.

위 표에서 보듯 구미와 왜관 그리고 성주 지역 대부분의 공소들을 왜관본당이 관할하고 있었으며 이후 왜관본당에서 분립된 본당으로 공소의 관할이 조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성주지역 4개 본당인 성주본당(1950년), 가천본당(1961년), 초전본당(1980년), 선남본당(2000년) 가운데 가천본당은 가장 많은 10여 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2020년 교세통계표에 따르면 가천본당은 신자 수 324세대 698명, 관할 공소는 총 10개소로 현재 금수, 챙기, 넉바위, 동원, 보월, 송계, 수륜 등 7개 공소가 있고 터만 남아 있는 공소는 적산, 먹방, 마수, 신계공소 등이다. 마수공소는 2023년 5월 20일 완전 철거되었고 법전공소는 가정집을 구입하여 사용하다가 더 이상 운영되지 않고 있으며, 오천공소 역시 일찌감치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고 리모델링을 거쳐 은퇴 사목자들의 거처로 이용되고 있다.


오천공소는 1963년 6월에 설립되었고 당시 신자 120명에 예비신자 60명이 있었다. 이후 1966년 정묵덕 엑베르트 신부가 75만원을 들여 오천공소 강당을 준공, 강복했다.


오천공소에는 앙드레부통 신부의 작품이 3점 있다. 정면에서 찍은 것도 아니고 해상도도 낮은 사진이지만 최대한 감상 가능한 상태로 보정해서 올려 본다. 허락없이 사진을 퍼와서 임의로 보정하고 게시한 데 대해 죄송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출처는 정확히 밝혀 두었고, 틈나는 대로 허락도 구해보고자 한다. 사진을 공개해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앞의 교세통계에 의하면 금수공소의 신자 수는 45명(남15, 여30)으로 조사되어 있다. 현재 금수공소는 운영이 중단되었으며 최소한의 관리는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금수공소는 다른 공소들과 달리 금수면 소재지 대로에 접해 있고 가천본당과 겨우 5킬로 거리에 불과한 데다가 도로 역시 잘 놓여 있어 본당과의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 따라서 공소의 활용도가 떨어져 폐쇄된 것이 아닐까 싶다. 너른 부지에 지어진 튼실한 적벽돌 건물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참고자료>
왜관반세기 -왜관천주교회오십년사- 1928-1978, 왜관성당 p.365
송효상, 가천성당, 디지털 성주문화대전
https://seongju.grandculture.net/seongju/dir/GC08400998?category=%EC%B0%B8%EA%B3%A0%EB%AC%B8%ED%97%8C&depth=3&name=%EA%B0%80%EC%B2%9C%EC%84%B1%EB%8B%B9%2060%EB%85%84%EC%82%AC&search=%EA%B0%80%EC%B2%9C%EC%84%B1%EB%8B%B9%2060%EB%85%84%EC%82%AC
다음카페 가천성당
https://cafe.daum.net/kachun
가천본당 건립과 공소사목을 위한 엑베르토 되르플러 신부의 헌신을 기록한 「분도통사(芬道通史)」의 일부분이 가천성당 카페에 올라와 있다.
https://cafe.daum.net/kachun/BxmC/16
* 「분도통사(芬道通史)」는 성 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주년 역사서다. 원저는 「스러진 집(Aufgehobene Haeuser)」이며 요한네스 마르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종신교수가 집필했다.
https://news.cpbc.co.kr/article/311120
가톨릭신문, 오천공소 강복, 1966.08.07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303170165886
가천본당 소속 공소의 이전 사진은 다음 링크 참조.
다음카페 가천성당 > 공소사진
https://cafe.daum.net/kachun/BzLl/4
다음카페 가천성당 > 신앙유적지-공소
https://cafe.daum.net/kachun/Bzpd
순례쟁이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saxsound/222794160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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