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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기행/대구대교구

지례성당 황점공소

by photomaker.anon 2025. 12. 26.

황점공소는 김천시 증산면 원황점 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증산면 장전리 서무터공소와 같이 병인박해(1886년) 때 피신한 교우들이 이곳으로 숨어들어와 처음에는 황점리에서 1킬로 떨어진 장자터라는 골짜기에 교우촌을 형성하여 숯과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황점공소는 지금은 없어진 장자터공소에서 비롯된 공소다. 

 

장자터공소는 가야산과 수도산 중간의 상투봉 아래 해발 750m에 있었다. 교우들은 초기부터 서무터공소는 물론 거창군 가북면의 박암공소와 내왕했다. 천주교인들이 언제부터 살기 시작했는 지는 확실치 않지만, 병인박해 때 경남 사천에 살던 유재선 베드로의 조부인 유 바오로가 이곳으로 피난와 살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 추측한다.

 

김녕 김씨 김 멜키울의 조부와 박용삼의 웃대 가정과 경남 합천 살던 김영준 시실로의 증조부 가정도 이사와 살았다. 박용준, 박용백 형제와 김영준 시실로와 김용석 등 4가구가 해방직후까지 장자터에 교우촌을 형성하고 살았다. 1885년 병인박해가 끝나고 경상도 지방을 순회 전교하던 김보록 신부가 황점공소에 판공성서를 주러 왔다는 기록이 있다.

 

장자터공소는 1936년 병자년 수해로 마을이 유실되어 신자들이 원황점 마을로 내려와 살아오다가 6.25전쟁 후 이 지역에 공비출몰이 극심하여 정부의 하산정책으로 모든 가구가 원황점 마을로 내려와 살게 되어 황점이 새로운 교우촌으로 되어 황점공소가 생기게 된다. 1968년 지례성당이 설립되고 윤에릭 신부의 헌신으로 1972년 황점공소가 건립되었다. 

 

2002년 테풍 루사가 마을을 덮치면서 모든 집들을 휩쓸었고 주민들은 1년 여의 컨테이너 생활을 한 끝에 2003년 새 집으로 입주했고 주변도 정비가 되었다. 대구대교구에서는 장자터를 중심으로 마을 일대 땅을 매입하여 황점신앙유적지로 조성한다. 

 

 

<참고자료>

 

병인박해 전후에 난을 피해 조성된 교우촌, 교구별성지>대구대교구:김천 황점 공소 신앙유적지,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http://www.paxkorea.kr/bbs/view.php?id=1001&no=548

 

황점공소의 이전 모습에 관해는 다음 기사 참고.

 

노성화(시몬), 신앙유적지-공소 : 황점공소(김천, 증산). 천주교 대구대교구 가천성당 홈페이지

https://cafe.daum.net/kachun/Bzpd/22

 

 

황점공소 인근 까말돌리 수도원에 관해서는 다음 기사 참고.

 

까말돌리 수도원 '전통약방'. 명동에 첫 개장, 가톨릭평화신문,2017.02.01

https://news.cpbc.co.kr/article/670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