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소기행/대구대교구

지례성당 서무터공소

by photomaker.anon 2025. 12. 1.

서무터공소는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상북도 거창군의 경계지점에 있는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서무터"라는 이름은 박해시절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살면서 착함(善)을 전하는 곳이라 하여 선무터(善武基)라 했으며 훗날 서무터로 바꿔 불렀다는 설이 있다. 

 

서무터공소를 세운 이는 안주원 알로이시오라는 분으로 1839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천주교에 입교하여 선교하다가 관헌을 피해 부인과 자녀5명을 데리고 전라도 무주 산막터로 피신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그곳에서도 역시 관헌을 피해 인접해 있는 이곳 금릉군 증산면 첩첩산중인 서무터로 이주하여 숯을 굽고 화전을 일구며 생활하게 되었고 2년 뒤인 1868년 10월 공소를 설립하였다.

 

당시 이곳에는 각처에서 신자들이 하나둘 모여 30가구가 넘게 살았다고 하며 공소 설립자인 안주원의 유해는 마을 옆에 안장되었다. 당시의 공소는 마을 윗쪽에 있었는데 1936년 수해로 파손되었다. 현재의 공소는 윤에릭(Erich Nussbickel 독일) 지례본당 초대 주임 신부가 1971년 신축 축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윤에릭 신부는 1931년 4월 독일에서 출생하여 1957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서품전부터 왜관수도원의 초청을 받아 1963년 한국으로 와 왜관, 점촌 황금동, 낙산, 선산, 지례본당 주임을 거쳐 1980년 10월부터 24년간 전주 인보성체수도회 지도신부로 재임하다 2004년 8월 원로사목자로 은퇴했다.  

 

한편 안주원은 조금 떨어진 원황점 마을 박씨 문중에도 전교를 하여 그의 딸을 출가시켜 이곳 서무터와 이웃의 마구일, 황점까지 전교되어 황점에는 따로 공소 집회를 가졌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아들 안도성 프란치스코가 공소회장으로 재직하면서 더 많은 외교인을 입교시켰다. 특히 그는 이름난 한의원으로 의술을 통해 자선사업과 전교사업을 많이 하였다 한다. 

 

병인박해가 끝난 후 경상도 지방을 순회하던 김보록 신부가 이곳 서무터(마구실) 공소에 판공성사를 주러 왔을 때의 교세통계표(1882~1883)에 의하면 44명의 신자가 있었고, 고백성사 33명, 영성체를 32명이 했으며 8명의 예비자가 세례성사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로부터 3년 뒤의 교세통계표(1885~1886)에는 31명의 신자가 살았으며 30명이 고해성서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무터공소는 대대로 안씨 일가가 공소회장직을 맡아 왔지만 현재는 신자수가 적어 활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젊은 사람이 어울린다고 하여 다른 성씨가 맡기도 한다. 2005년 현재 공소에 적을 둔 세대는 9가구, 그 중 4가구가 신자지만 1가구가 외지에 나가 살고 있어 사실상 3가구만 미사나 공소예절에 참례한다. 미사는 한 달에 한 번, 한 주씩은 공소예절을 올린다. 

 

 

앙드레부통 신부의 벽화가 남아 있다. 

 

 

 

 

<참고자료> 

 

천주교 전주교구, 윤에릭, 김치삼 신부 금경축

http://jcatholic.brighten.co.kr/bbs/board.php?bo_table=interbro_gyogu&theme=main&wr_id=664&page=145

 

김선자, 만나고 싶었습니다.-서무터 공소 안인환 할아버지, 월간빛 제263호, 2005.03

https://www.lightzine.co.kr/last.html?p=v&num=70

 

교구별 성지>대구대교구:김천 서무터 공소 >병인박해 당시 형성된 착(善)함을 전하는 선무터(善武基) 교우촌,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http://www.paxkorea.kr/bbs/zboard.php?id=1001&page=1&sn1=&divpage=4&category=8&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49

 

 

주소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장전리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