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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기행/대구대교구

고아성당 송림공소

by photomaker.anon 2025. 7. 4.

송림공소는 "구미 지역 가톨릭 신앙의 못자리"라고 묘사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이곳에 처음 가톨릭 신앙이 전해진 것은 실학자 김명양이란 인물이 남만억에게 신앙을 전했고, 그가 다시 1894년경 고아면 송림동 권치하 시몬에게 교리를 전하여 영세시킴으로써 시작됐다 한다. 두 인물 모두 여진교우촌에 살던 사람으로, 결국 여진에서 떠난 신앙의 불씨가 송림공소로 이어진 셈이다. 

 

송림공소 교우들은 1906년 선산군 고아면 송림동 102번지 목조 기와집을 구입하여 공소로 사용했고, 1933년 송림동 210번지에 새로 공소를 마련하는 등 세 차례 이전한 끝에 구미지역 선교와 사목을 맡았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1967년 지금의 송림공소 대지를 장만하여 현대식 공소 건물을 지어 지금에 이른다.

 

이후 권치하의 아들들인 권성중과 권익중, 그의 질녀 권  루치아, 송림에서 세례를 받은 이재원 등이 구미로 이주하여 교우 가정이 네 집이 되고 이들의 전교를 통해 세례받은 이들이 늘어나 1948년 구미공소가 설립되는데, 1956년 12월 30일에 구미본당으로 승격된다.

 

구미본당은 1958년 7월에 봉한공소를, 1968년 8월 4일 아포공소를 설립한다. 이후 1979년 9월 26일 치명복자 축일에 원평본당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신평성당을 분가시킨다. 1990년 12월 21일에는 형곡성당을, 1996년 8월 30일에 도량성당을 분가시킨다. 이후 구미공단 발전과 도시 확장에 따라 많은 인구가 유입됨으로써 새로운 본당 설립이 필요하게 되어 2003년 봉곡성당과 고아성당을 설정한다.

 

이처럼 구미지역의 본당과 공소들은 여진교우촌의 신앙이 결실을 맺은 송림공소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신자들은 송림공소가 구미지역 가톨릭 신앙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구미지역 본당 및 공소(설립년도 기준)

 

 

송림공소는 경북 구미시 고아읍 송평구길 24에 자리하고 있다. 고아(高牙)는 ‘높은 곳에 깃발을 꽂은 아성’이라는 뜻이다. 고려군이 후백제와의 마지막 결전을 치를 때 왕건이 매봉산 아성에 주둔하고 있었다 해서 매봉산 주변 송림과 괴평 마을을 ‘고소아리동리’(高所牙里洞里)라 불렀고, 이를 줄여 ‘고아’라고 했다. 이 마을이 ‘송림’으로 불린 것은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매봉산에 소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송림공소는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회의 알빈 슈미트 신부가 설계했다. 알빈 신부는 넓지 않은 대지의 제약 때문에 공소 건물을 주로 장방형으로 지었다. 내부는기둥이 없는 긴 강당식 형태의 공간을 구성하되 신자들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제대와 제단 십자가로 집중할 수 있도록 천장 선의 흐름을 제단으로 향하게 꾸몄다. 또 제단과 성당 양쪽 벽면에 좁고 넓은 다양한 형태의 창을 내 공소 내부 공간을 밝고 온화하게 꾸몄다. 그리고 성당 외부에는 항상 십자가가 달린 종탑을 지어 이 건물이 하느님의 집임을 당당하게 드러낸 것이 특징이다. 

 

 

<참고자료>

 

원평성당 홈페이지, 본당소개

https://www.wonpyung.or.kr/bbs/content.php?co_id=data1_1a

 

가톨릭평화신문, [공소(公所)]22. 대구대교구 고아본당 송림공소, 2023.06.07

https://news.cpbc.co.kr/article/1109999

 

공소를 찾아서-고아성당 송림공소, 월간<빛> 제327호, 2010.07, p.66

https://www.lightzine.co.kr/last.html?p=v&num=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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