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목정성지는 기해박해(1839년) 이후 어의현 일대에 형성된 여러 교우촌 가운데 하나로, 병인박해 시기 울산 장대별(울산 병영순교성지)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아 순교한 이양등 베드로, 김종륜 루카, 허인백 야고보 등이 신앙을 지키며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던 범골이 있고 순교 후 세 사람의 유해를 모셨다가 대구복자성당으로 옮겼고, 이곳에는 가묘가 있다. 이들은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로 선언되었다.
진목공소가 있는 진목정의 원래 이름은 '참나무뎡이'라 했다. 참나무는 진목(眞木)이고 '뎡이'는 골짜기를 의미하는 '단이'의 방언이다. 따라서 이 지명은 참나무가 많은 골짜기였음을 알 수 있다. '참나무뎡이'라는 정겨운 우리말 지명은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는 개혁정책이 실시되면서 진목정으로 정리되어 지금에 이른다.
참나무뎡이에 교우촌이 자리 잡은 시기는 특정할 수 없다. 하지만 경신박해(1860년) 이전부터 간월공소를 중심으로 언양과 경주 남면의 산악지대에 신자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경신박해 당시 순교했거나 재산을 수탈당하는 등의 핍박을 받았다.
최양업 신부도 경신박해 당시 이 지역에 사목방문을 했다가 박해를 만나 죽림굴로 피신하여 경신박해의 참혹한 사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최양업 신부의 뒤를 이어 이 지역 사목을 맏은 이는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였다. 그가 1862년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 참나무뎡이로 주정되는 지역에 스무날 정도 머물면서 경주, 언양, 밀양의 산간지방에서 찾아오는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고 교리공부를 시킨 내용이 나온다.
이상의 기록에 의하면 참나무뎡이 공소와 교우촌은 경신박해 직후에 세워졌다고 볼 수 있고, 박해가 일어났을 때는 피난처 역할과 경상남도 남부 산악지대 신자들에 대한 연락처의 중심 구실을 맡고 있었다 할 수 있다.
다블뤼 주교는 1864년 봄까지 매년 이곳으로 사목방문을 했드며, 그 해 가을부터 이 지역의 사목활동을 리델(Felix Clair Ridel) 신부에게 인계한다. 후에 6대 주교가 되는 리델 신부는 1865년 이 지역으로 사목방문을 오게 되었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사제의 사목방문은 중단되었으며, 이러한 사정은 1883년 김보록(Achille Paul Robert) 신부가 방문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김보록 신부의 사목방문은 1883년부터 부산본당이 설립되는 1890년까지 매년 이루어졌다. 그 이후에는 대구본당과 부산본당의 신부들이 협의에 의해 사목방문이 진행되어 오다가 1897년과 1898년에는 명례성당을 담당한 라우렌시오 신부가 이곳 사목을 전담하기도 했지만 건강이 나빠져 더 이상의 사목방문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이에 1899년 10월 김보록, 김성학, 안세화(플로리앙 드망즈), 에밀타케 등 네 명의 신부가 사목분할을 논의하여 경상도 남북부 17개 공소를 부산본당 소속으로 할 것을 결정함으로써 진목정공소는 부산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고, 1926년 경주성당(현 성동성당)이 세워지자 경주성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진목공소는 이후 성건성당, 건천성당을 거쳐 현재는 산내성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공소 뒷편으로 성모상이 있고 바이블가든으로 가는 길이 있다. 바이블가든은 대구가톨릭대 조경학 교수를 지낸 안계복 베르나르도와 "성경의 식물 명칭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영숙 클라라 부부가 조성한 온실로,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식물을 키우고 있다 하나, 잠겨져 있어 둘러보지 못했다.



<참고자료>
진목정성지 홈페이지, 진목정과 진목공소
http://jinmokjeong.or.kr/p105
가톨릭신문, 대구대교구 성경식물원 '바이블가든,' 2022.09.25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209200136006
성경식물원 바이블가든 유튜브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LxLyBIIxotCW1VVwA2VGI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