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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기행/대구대교구

산내성당 와항공소

by photomaker.anon 2025. 5. 7.

경주시 산내면 내의 의곡, 진목, 와항, 범곡공소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중심되는 신자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의곡공소 자리에 1999년 7월 산내공소를 세웠다. 즉, 산내면에 위치한 공소 신자들은 쇠락해가는 공소들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1991년 1월 기공식을 갖고 그해 7월 산내면 의곡1리 현 위치에 산내공소를 지어 전임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 주례로 축성식 행사를 가졌는데,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08년 9월 5일 산내본당으로 승격된 것이다. 그 결과 진목공소를 제외한 와항, 범곡공소는 쇠락하게 된다.
 
와항공소는 초기 박해 시대 때부터 신자들이 살았던 교우촌으로, 해발 500미터의 높은 산 고개에 옛날부터 기와를 굽는 흙이 많이 출토되어 와항(瓦項)으로 불렸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이곳에 빨치산이 많이 있어 그들의 소굴이 될까 두려워 공소를 자진 철거했던 사실도 있다 한다. 이곳에 언제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살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높은 산과 계곡에 있는 마을이고 부근에 1801년 신유박해 이후부터 신자들이 살았던 선필, 탑골, 진목정 등의 신자촌이 있으므로, 이곳도 박해시절부터 신자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병인박해 후인 1896년 대구에 살던 황 루카 가정이 이곳에 자리잡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파했다. 신자들의 힘으로 현재 공소 맞은편에 처음으로 공소를 설립했다. 교세 통계표에 의하면 1910년부터 1926년 경주본당이 설립될 때까지는 부산진성당(현 볌일본당) 관할 공소였다. 
 
7대 공소회장 황달오 시몬이 당시 경주본당 주임신부였던 윤광재 신부의 도움과 신자들의 열성으로 초가집 공소를 지었고 얼마 후 신자들이 성미를 모아 기와를 올렸다. 
 
1975년 1월에는 부산교구 초대 교구장 최재선 요한 주교, 진 수산나 할머니와 본당의 도움으로 공소 운영을 위한 논 두 마지기를 마련했고 신자 수가 늘어서 마을의 총 20세대 중 10세대가 신자 가정일 때도 있었다. 
 
6대  성윤중 안토니오 공소 회장 때는 3세대 30명의 신자가, 1976년에는 8~9세대 약 65명의 신자가 있었으나 현재는 공소 회장 가정 등 많은 신자들이 경주 등 다른 곳으로 이사하여 몇 세대 밖에 남아 있지 않다. 
 
<한국의성지와 사적지>에 실릴 정도로 와항공소는 박해시절과 닿아 있는 공소로서 의미가 가볍지 않은 곳이다. 거기에 소개될 당시의 모습도 열악했지만 현재는 더 망가진 모습이다. 이곳이 공소인지 알 수 조차 없을 정도로 허물어진 폐가가 돼 있었고, 내부에도 종교시설임을 추론할 수 있는 아무런 단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편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생성과 소멸은 사물과 사람에게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의미를 가진 장소의 소멸을 방치한다는 것, 그것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과연 이것이 최선이었을까?
 

 
 
<참고자료>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교구별성지>대구대교구:경주 산내 성당
http://www.paxkorea.kr/bbs/view.php?id=1001&no=445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교구별성지>대구대교구:와항공소
http://www.paxkorea.kr/bbs/view.php?id=1001&no=444
 
 

주소 : 경주시 산내면 대현와항길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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