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기공소가 위치한 곳은 경주시 내남면 비지리다. 공소이름은 해당 지역의 지명을 따라 짓는 것이 일반적인데 빌기공소는 그 틀을 따르지 않고 있어 비지리와 빌기의 연관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빌기'가 무슨 뜻이며 한문인지 한글인지 하는 의문이 든다.
일단 비지리라는 이름은 마을 앞에 학산이 있는데 이 산이 학이 날아가는 형상이라 해서 날 비(飛)자와 다만 지(只)자를 따서 비지리(飛只里)라고 했다 한다. 따라서 비지리와 빌기의 연관성은 없는 걸로 보인다. 그렇다면 '빌기'는 무슨 뜻일까?
야사에 의하면 옛날 어떤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단석산으로 행군하던 중 마을 입구에서 갑지가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아 마을 뒷산 큰 바위에 빌었더니 행군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빌어서 행군을 했다 해서 '빌기'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1871년에 작성된 경주읍지에 이 지역이 '비을지(빌기)로 기록되었는데,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비지리가 됐다. 따라서 한글 지명 비을지, 혹은 빌기가 한문 비지리로 표기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 표기의 변화와 상관없이 지역에서는 여전히 비을지, 빌기 등으로 써왔기 때문에 빌기공소로 이름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에서 언제부터 신자들이 살았는 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마을 내에 옛날에 옹기를 구웠고, 솥을 만들던 '점말'이 있으므로 박해시절부터 피난온 신자들이 살지 않았나 추측된다. 다른 한 설에 따르면 병인박해때 풍기 단양으로 피난갔던 김비오 회장이 돌아와서부터 공소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돌아와 진목공소에서 문답책을 읽어본 후 천주교 진리의 오묘함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전교하기 시작하여 서 시몬과 김상곤 회장과 함께 의형제를 맺고 열심히 공소를 이끌어 나갔다.
처음 공소건물은 1951년 6.25때 3대 김재수 도나도 회장 재직시 신자들이 성미를 모으는 한편 본당 윤광재 신부의 도움으로 대지를 마련하고 공소 건물을 지었다. 처음에 초가집으로 시작했으나 후에 지붕을 스레트로 바꾸었고 공소에 신부가 쉴 방을 마련했다. 이렇게 해서 1975년에는 15세대에 70명의 신자들이 살았었다. 부산본당의 교세통계표에는 1897년부터 '돌기'라는 공소의 통계가 나오는데 이것이 빌기공소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박해시대부터 시작된 빌기공소의 신앙은 3~4대에 이르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참고자료>
경주시 홈페이지, 내남면, 우리마을소개, 유래
https://www.gyeongju.go.kr/village/naenam/page.do?mnu_uid=498&
서경시선, 성동천주교회80년사(5) 성동성당 여든 돌 기념 문집,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neopoemir/120062678668
월간<빛>, 공소를 찾아서-성동성당 빌기공소, 2009.04, No.312
https://www.lightzine.co.kr/last.html?p=v&num=977
성동성당홈페이지
https://cafe.daum.net/sungdongc
https://cafe.naver.com/sungdong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