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공소의 설립은 1959년 5월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정희 안나의 남편 김호현 라파엘이 천주교에 입교하고자 하였으나 당시 교통사정이 좋지 않아 포항성당까지 가려면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김회장은 포항성당(현 죽도성당)의 안덕화 베드로 신부(프랑스외방선교회)를 찾아가 상의 후 청하에 공소 설립을 추진한다. 이후 청하 면민에게 안내장을 보내고 1959년 5월 5일 포항성당 청하공소가 설립되었음을 알렸다. 공소건물이 없었으므로 이정희씨 댁에 하상일 전교회장을 상주시키며 공소예절을 주재하였으며 교리를 가르지고 성가는 초등학교 교사로부터 아코디언으로 배웠다. 매달 신부가 수녀를 동반하여 미사를 집전했고 예비 신자가 많아 미사때는 마당이 꽉 채워졌다고 한다. 1959년 8월 15일 이정희 안나 가족 모두에게 청하에서 처음으로 영세를 주었으며 성탄 때는 십여 명이 영세를 받았다.
신자 수가 늘면서 1962년 청하공소는 대지 215평에 방 네 칸의 기와집을 사들여 그해 11월 안동에서 주교까지 모시고와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1978년 덕수성당이 설립되어 청하공소는 덕수성당 소속이 된다. 이 공소는 향교재단과의 법률다툼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었으나 승소하여 되찾은 공소건물을 덕수성당에 기증하게 된다. 이후 기존 공소를 허물고 새로 짓기로 하여 철거를 하였으나 규제에 묶여 무산되고 만다. 이 공소자리는 현재 텃밭으로 쓰고 있다.
권혁시 모세 신부가 오면서 청하공소는 덕수 성당에서 장성성당으로, 이후에 흥해성당으로 소속을 옮기게 된다. 흥해성당 신부와 공소 신자들이 노력하여 김철재 신부 때에 지금의 공소건물 부지를 매입하였고 오창수 신부 부임시 공소건물을 짓기로 하여 건립기금을 마련하여 손종현 신부 재임시 40평 규모의 공소건물을 세우게 된다.
공소가 지어지기 전에 사제관이 지어지고 권혁시 신부가 공소에 기거하면서 컨테이너에서 주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2007년 11월 3일 조환길 부주교를 모시고 감격의 청하공소 축성식을 하게 된다. 2009년부터 은퇴한 원로사제 조정현 바드리시오 신부가 상주하면서 주변을 가꾸고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2023년 3월 25일 배교를 후회했던 초기 교회 신자 최해두(崔海斗)를 기리는 '최해두 회심경당'이 청하공소자리에 봉헌된다. 그는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대상자 가운데 하나인 최영수 필립보의 부친이다.









최해두와 신유박해, 그리고 참회록 「자책」(自責)
최해두는 1784년 교회 창설 직후 영세 입교했던 신앙 선조 중 한사람이다. 그는 처사촌인 윤유일 바오로의 권유로 입교하여 정약종, 황사영, 최창현 등 교회 지도자급 인물들과 함께 교회일에 참여했고 주문모 신부와도 여러 차례 만나 성사를 받았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를 피해 피신했으나 연좌율에 따라 부친이 체포되자 즉시 자수했다. 그 후 혹독한 고문을 못이겨 배교를 선택했고 그해 5월 10일 유배형을 선고받고 경상도 흥해로 가게 된다. 신유박해 당시 전국 유배자 213명이 「사학징의」(邪學懲義)에 기록되어 있는데, 경상도 동해안으로 유배온 14명 가운데 정약용과 최해두가 포함되어 있었다.
최해두는 124위 순교 복자 최창주 마르첼리노 집안이다. 최장주의 사위는 원경도 요한이며 둘째 딸은 최조이 바르바라인데, 그녀의 시아버지가 신태보 베드로이다. 최해두의 처가는 파평 윤씨 집안으로 최해두가 신앙을 갖게 해 준 처 사촌이며 우리나라 첫 견진성사를 받은 윤유일 바오로, 윤유오 야고보, 윤점혜 아가다, 윤운혜 루치아와 남편 정광두 바르나바 등 9명의 복자 집안이며 최해두의 아들 최영수 필립보와 최명문 야고보까지 9명 순교자 집안이다.최해두와 함께 활동하던 인물로 정약종, 황사영, 최창현, 홍문갑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 지도자급 신도집단의 일원이었다.
최해두는 당시 혹독한 고문에 못이겨 배교를 택했다가 흥해 유배 중 회심하고 참회록인 「자책」(自責)을 남긴다. 배교로 인한 유배생활을 통해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자 했던 회심자의 통렬한 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스로 꾸짖는 '자책'을 통해 자신의 삶과 믿음을 전하기 위해 책을 쓴 최해두는 '천주삼덕'과 '십계명'을 자세히 해설하여 새 삶의 윤리적 기준으로 삼고자 했다. 배교로 인한 고뇌와 갈등을 신앙으로 승화시킨 참회의 글로, 한글로 쓰여진 이 책은 배교자의 신앙적 고뇌와 영적 자책을 들려준다.

최영수 필립보와 기해박해
최해두는 귀양생활이 시작된 지 5~6년 후 부모의 부음을 듣고서도 장례를 지내러 가지 못하고 자신도 귀양지에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을 거둔 아들 최영수 필립보는 부친 사후 형편이 어려워 구걸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며 배우지도 못하여 체포당시 한글책 2권과 묵주뿐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버지 최해두에게 교리를 배웠다고 했으니 결국 「자책」이 교리서가 된 셈이다. 남명혁 다미아노의 인도로 앵베르 주교로부터 필립보라는 세례명과 견진성사를 받고 주교님과 모방, 샤스탕 신부의 지도로 미사에 쓸 포도주 제조법을 배워 실행하였다.
1839년 4월 기해박해가 일어나 동생 최병문과 가족들이 좌포도청에 체포되고 집은 약탈당하였으나 현장에 없어 남이관 세바스티아노 집으로 피신하였다. 동생 최병문은 형조로 이송되어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배교하여 풀려 났으나 10월에 다시 좌포도청에 잡혀 죽임을 당한다.
기해교난이 발생하자 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는 순교자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못가 자신도 잡히게 되면 순교자의 행적이 영영 사라질 것을 염려했다. 그는 서울의 신도들 정하상, 현경련, 이문수, 최영수, 현석문 등에 당부하여 순교자 전기를 이어가도록 당부했고 이후 체포되어 순교했다. 그러나 정하상과 현경련은 1839년에, 이문수도 1840년 순교힌다.
최영수는 투옥 중인 교우들을 찾아가 옥바라지를 하면서 순교자의 행적을 수집하는 작업을 계속하다 1841년 9월에 그 역시 장살로 순교하게 되니 기록을 정리하는 일은 현석문 만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현석문은 1845년 페레올(Ferreol) 주교에게 작업결과를 전하고 1846년 병오교난 때 순교하였다. 이렇게 이어진 순교자 전기 정리작업은 김대건 신부의 기록을 덧붙여 기해일기로 완성된다. 최양업 신부는 이 기록을 라틴어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기해일기가 완성된 것이다.


최해두의 자책은 직설적이고 자조적이어서 곱씹을수록 울림이 크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날을 맞게 될까.

<참고자료>
김토마스 아퀴나스, 본당 설립전시3 11. 죽도성당과 공소들-흥해, 청하, 송라, 흥해성당 다음카페, 2021.07.04
이 글은 「죽도성당60년사」에 기록된 이정희 안나 할머니의 회고록을 참고한 글이다.
https://cafe.daum.net/hhca-30/I6Q8/8
가톨릭신문, 대구대교구 포항 흥해본당, 청하공소 '최해두 회심 경당'봉헌,2023-03.28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303280167770
경당이 지어지기 전 청하공소에 관해서는 다음 기사 참조.
월간 <빛>, 공소를 찾아서-흥해성당 청해공소,2010.04.통권324호
https://www.lightzine.co.kr/last.html?p=v&num=1165
「사학징의」(邪學懲義)는 신유박해 때 문초와 형벌을 받은 천주교 신자들의 진술 내용과 판결문 등을 수록한 책이다. ‘징의’는 ‘천주교를 징벌하고 정학(正學)인 성리학을 편다’는 뜻으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척사(斥邪)의 입장에서 편찬된 책이다. 1권에서는 정순왕후의 천주교 금지령으로부터 신유박해 사건을, 2권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처벌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다.
1801년 1월 10일부터 12월 25일까지 천주교인을 체포하고 투옥, 신문하고 처벌한 내용을 일지형식으로 기록한 이 문서는 서울대교구 순교자 헌양위원회가 번역을 시작, 2001년 「역주 사학징의」 1권을 발간하고 21년에 걸친 후속 작업을 통해 2022년 「역주 사학징의」 2권을 완간하였다.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학징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090
cpcb뉴스, 21년 만에 완간된 「역주 사학징의」
https://www.youtube.com/watch?v=SODWqXnb4gg
가톨릭신문, [한국 가톨릭의 고전] 4 최해두의 「자책」, 1993.10.17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811080006139
오안드레아, 대구대교구 공소 : 청하공소-최해두 회심경당/대구대교구
https://ohandrew.tistory.com/7075550
최해두 부자에 관해서는 순교자헌양회보에 실린 이동욱 토마스 신부의 글 참고. PDF 파일이라 다운받아 읽을 수 있다. 저작권 문제와 글이 너무 길어져 링크로 대신한다.
이동욱 토마스 신부, 순례자의 노래는 회개I <차책>의 시작, 210호(2020.07)
https://martyrs.or.kr/upfile/iboard/%EC%88%9C%EA%B5%90%EC%9E%90%ED%98%84%EC%96%91%ED%9A%8C%EB%B3%B4%207%EC%9B%94%ED%98%B8_20200629101626.pdf
이동욱 토마스 신부, 순례자의 노래는 회개II 양심의 순교, 참회, 211호(2020.08)
이동욱 토마스 신부, 순례자의 노래는 회개III <차책>이후, 212호 (20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