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공소가 있는 경주 지역의 주요 본당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동성당(구 경주성당) 1958년 5월 6일 완성된 목조건물로 당시 교황사절 랑베르띠 주교 집전으로 헌당식이 거행되었다. 1992년 4월 1일 새벽 전기누전으로 성당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26년이면 백주년을 맞는 유서깊은 성당이다.
성건성당은 한국천주교 선교200주년 기념성당으로 1983년 성동본당에서 분가하여 설립되었다. 천주교 성지와 사적지인 경주 관아와 옥 터를 관할하고 있다. 1993년 황성본당을 분가했으며 2005년에는 관할 내 건천공소가 본당으로 승격 분가하였다.
용강성당은 2011년 8월 26일 황성본당에서 분가되었고 성전 마련을 위해 공장건물을 매입한 후 증개축 공사를 거쳐 2013년 9월 15일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주례로 새 성당 봉헌식을 가졌다. 신당공소가 황성본당에서 용강성당으로 소속이 바뀐 게 이 무렵일 것이다.
신당공소는 5.16 이후 정부에서 실시한 한센인 정착사업에서 시작했다. 당시 환자 가운데 상태가 나은 사람을 대상으로 정착마을을 조성하면서 모인 사람들과 칠곡 애성원(연호공소)에서 처음 시작된 신앙이 경주 보문단지를 거쳐 지금의 신당공소에 자리잡게 되었다.
초기에 벽돌과 슬레이트만으로 지은 공소 건물에서 일 년에 두 번 경주 성동성당 신부의 미사집전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은 지금의 공소를 짓고 생활한 지 30년이 흘렀다.(2008년 기사 참고) 정확히 언제 지금의 건물이 지어졌는 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당시 교구지원이 없어 보문단지 내에서 이주 당시 받은 보상금을 기초로 교우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마련했고, 구라사업복지회(릴리회) 엠마 프라이싱거 원장과 경주의 성동성당, 나사업연합회에서 도움을 주었다.
최초 정착시에는 한센인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비 환우가 많고 생업으로 이어온 양계업 또한 노령화로 많이 그만두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한센인 정착촌과 마찬가지로 주변은 버려진 축사가 많다. 용강성당 홈페이지에 의하면 신당공소는 2023년 5월까지는 운영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후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관리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월간<빛>,경주 황성성당 신당공소를 찾아서,2008.9. No.305,p80
https://www.lightzine.co.kr/last.html?p=v&num=892
가톨릭신문,[새 성당 봉헌식]대구대교구 용강본당,2013.09.03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309030066917
용강성당 홈페이지
https://cafe.daum.net/yongkang7
가톨릭신문,구라사업계의 지주 나사업가연합회 10년 발자취,1977.01.30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912120143209
가톨릭신문,[나환우들을 형제처럼 돕는다-전국 구라사업 후원단체 소개] 릴리회,1988.01.24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907080085713
가톨릭평화신문,한센인들의 대모, 엠마 프라이징거 여사, 2011.05.03
https://news.cpbc.co.kr/article/375628
주소 : 경주시 천북면 소티고개길11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