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포공소는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본당인 양남성당과 함께 뛰어난 바닷가 풍경을 자랑한다.
양남성당은 양남면 주상절리와 월성원자력공단 사이 언덕에 있고 동해의 절경이 펼쳐진다. 양남성당은 1983년 2월 신자들의 최초 모임 이후 공소예절을 시작으로 1984년 양남공소로 정식 인준을 받는다. 1987년 본당 신축 계획과 함께 부지를 매입하고 1994년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인 1995년 성당이 준공되고 1997년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주임신부로 박홍도 치릴로 신부가 부임한다.
감포공소의 시작은 1980년대 이곳으로 이주한 이종은씨를 비롯한 두 명의 신자들로부터이다. 이들은 서로가 신자임을 알게 되어 당시 소속성당인 성동성당까지 매주 미사 참례가 힘들어 함께 모여 가정에서 공소예절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감포공소라는 명칭을 받게 되었고 수요일 마다 양남성당 신부가 와서 평일미사를 집전해주었다. 그렇게 하여 차츰 신자들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늘 공소건물을 짓고 싶다는 희망이 넘쳤다.
하지만 감포읍 지역은 바닷가여서 예로부터 무속신앙이 강한 지역이어서 공소를 짓는 일은 힘든 일이었다. 1980년대 즈음 부지를 구입했지만 입구가 감포중학교 소유인 탓에 건축허가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2001년 진입로 허가를 받았으나 입구를 큰 구조물로 가로막는 등 반대가 심했다. 그렇게 2004년 공사가 재개되어 2005년에야 현 위치에 공소 건물을 세울 수 있었다.
양남성당은 1999년 감포공소 설립 계획을 확정하고 기금 마련에 들어갔으며 마침내 단층 조립식 건물로 대지 1300평, 연건평 70평 규모로 경당과 제의실, 주방 등을 갖춘 감포공소가 준공되었고 2005년 9월 11일 최영수 주교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그러나 코로나19를 맞아 공소 신자 수가 급감하고 미사도 중단된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허연구 모세 신부는 '하느님 섭리 안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각오로 교구에 감포공소 파견을 간청한다. 허 신부는 1934년 생으로, 고령을 감안하여 반대가 있었지만 2021년 3월 1일부로 감포공소에 파견된다.
부임 후 아무도 찾지 않아 낡은 공소에서 신자1명과 미사를 봉헌하며 이후 공소 상주를 시작하며 주일, 평일 미사를 봉헌하고, 공소를 누구나 와서 쉬어갈 수 있는 피정의 집처럼 아름답게 꾸몄다. 바닷가가 잘 보이는 쪽에 숙식이 가능한 카라반을 설치하고 방문객을 맞을 준비를 하기도 했다.
허신부가 상주한다는 사실을 입소문으로 알게 된 신자들이 하나둘씩 공소를 찾았고 피정도 진행됐다. 그렇게 2년이 흘러 지금은 10명, 많게는15명이 주일미사에 참례한다.
2014년 4월 17일 대구 계산주교좌성당에서 허연구 신부의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 축하식이 열렸다. 사제생활 50년 동안 가톨릭 농민회와 노동운동에도 헌신했고 청소년 사목 활성화를 위해 사재를 털어 대철장학회를 설립하여 바른 청소년 성장을 돕기 위한 물질적, 정서적 지원에 기여하기도 했다.








<참고자료>
가톨릭신문, 대구대교구 감포공소 봉헌, 2005.10.20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0510200130130
월간<빛>,공소를 찾아서-양남성당 감포공소. 힘들기에 더욱 소중한 신앙,2009.7 No.3115
https://www.lightzine.co.kr/last.html?p=v&num=1015
가톨릭신문, 아흔 살 노사제의 열정, 시골 바닷가 공소에 희망의 돛 펼치다, 2023.09.19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309190210245
가톨릭신문, 대구대교구 허연구 신부 사제수품 금경축 축하식,2014.04.22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404220087813
경주신문, 바다 품은 아름다운 두 성당... 해 뜨는 양남성당과 감포항 한눈에 펼쳐지는 감포공소,2022.01.20
http://www.gjnews.com/news/view.php?idx=72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