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공소가 있는 청도군 각북면은 1906년 청도군에 편입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지동, 중지동, 하지동을 병합하여 지슬동이라 하여 각북면에 편입되었고 1988년 지슬동에서 지슬리(芝瑟里)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처럼 지슬리는 우미산 아래 3개의 자연 마을이 합쳐진 이름인데, '지슬(버섯 芝, 비파 瑟)'이란 이름이 특이해서 알아보려 했으나 고증할 길은 없다고 한다. 다만 각북에서 치실을 거쳐 우록으로 해서 대구로 가는 고개 아래에 있다고 해서 치곡(峙谷) 또는 치실(峙室)이라 불렀는데, 치실은 고개 입구라는 뜻이다.
지슬공소는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서 이주해 온 김영원이 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1950년대 말 칠곡 가실성당 교우였던 김달주 노렌죠가 지슬리로 이주해 와서 자신의 한옥집에서 예비자를 모아 교리를 가르치고 전교를 한 것이 지슬공소 설립의 초석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지슬공소는 낙후된 한옥에서 공소예절을 계속하며 전교에 힘써 60명에 달하는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다. 1996년 청도성당 21대 곽재진 베드로 주임 신부 재임 시 공소건축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공소건축은 당시 본당 신부와 신자들, 공소신자들의 힘을 모아 교구의 후원과 동성건축사, 대광건설, 강남조경 등 많은 이들의 봉헌으로 2000년 4월 현재의 모습으로 경당을 완공하여 축성하였다.
각북면에는 지슬리를 포함, 15개의 동이 있는데 이 지역들은 미신이나 불교의 영향이 강해 전교가 잘 안되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공소들이 신자가 줄어드는 데 반해 지슬리는 전원주택으로 각광을 받는 지역이어서 대구 등에서 이주해온 신자들로 인해 신자가 소폭 늘기도 했고 특히 젊은 부부가 늘어 이전 보다 활기를 띄고 있다. 2010년 현재 이상만 공소회장은 15세에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며 그의 아들은 사제성소의 길을, 딸은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한다.
확실히 지슬공소는 시골 공소와 주변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전원주택 단지로 주목을 받은 탓인지 현대적인 건물이 즐비하다. 별도의 주차장이 갖춰져 있으며, 계단을 올라가면 현대적인 공소건물이 나온다. 방문 당시 경당 내에서 회합이 있어 내부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참고자료>
박윤제, 디지털청도문화대전>청도군>지명:지슬리, 한국학중앙연구원
오일영, 디지털청도문화대전>청도군>종교와신앙:지슬공소,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www.grandculture.net/cheongdo/search/GC05501490?keyword=%EC%A7%80%EC%8A%AC&page=1
김명숙, 공소를 찾아서-청도성당 지슬공소, 월간<빛> 제323호, 2010.3, p,78
https://www.lightzine.co.kr/last.html?p=v&num=1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