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박해(1866년) 당시 이 지역으로 피신했던 교우들이 신앙촌을 형성하였고 옹기를 만들며 생계를 유지해나갔다. 1800년 박해시대 후반 곽동수 전임 회장의 모친 이잠복 안젤라의 증조부가 효일(현 신광1동)에서 교우촌의 첫 신앙인으로 살았다. 1909년 김봉삼 가밀로(초대 공소회장) 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1909년 3월 3일 지일마을(신광리 813번지)에 공소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신앙의 씨앗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1916년 대구대목구(현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 플로리앙 드망즈(Florian Demange, 1875~1938) 주교가 공소를 축복할 당시 신자 수는 126명이었으며, 10년 후에는 300명으로 늘어나는 등 교세가 확장되었다.

1960년 후반에 이미 60년의 역사를 갖고 있던 신광공소는 당시 약 30세대 2백여 명의 신자가 있었지만 공소 건물이 낡아 지탱하기 힘들게 되어 신축에 나선다. 전 공소회장 고 곽용수 바오로(곽동수 공소회장의 형)가 250평의 대지를 제공하고 금호본당과 독지가, 공소신자들의 노력으로 1968년 2월 23일 착공하여 9월 23일 완공하였고 10월 25일 서정길 대주교 주례로 낙성 및 강복식이 열렸다. 공소 공사 현장에는 신자들의 헌신적 봉사에 감동한 같은 동네 비신자들까지 도움의 손길을 보태는 흐믓한 정경을 보여주었다 한다.
이처럼 신광공소는 1909년에 설립되어 2009년에 100 주년을 맞은 유서깊은 공소다. 백주년 기념 미사는 총대리 조환길 주교 및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이루어졌고, 원로 사목자 박원출, 류승렬 신부를 비롯하여 신광공소 출신 노건우, 박건모 신부와 신자 400여 명이 모여 치러졌다.
공소내 안내판에는 신광공소를 "영천지역 신앙 선포의 요람"이라 적혀 있는데, 인근에서 구룡공소를 제외하고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자료>
기톨릭평화신문, 지난 한 세기 은총에 감사 대구 금호본당 신광공소 100돌 기념미사, 2009.06.09
https://news.cpbc.co.kr/article/297953
가톨릭신문,금호본당 신광공소 낙성, 1968.11.03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309210210793
기톨릭신문, [화제를 찾아서] 신자들 힘으로 세우는 금호본당의 신광공소, 1968.04.28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307050191869
박지현, 금호성당 신광공소를 다녀와서, 월간<빛> 제299호, 2008.03, p.68
https://www.lightzine.co.kr/last.html?p=v&num=822
박지현, 현장탐방-금호성당 신광공소 100주년, 월간<빛> 제315호, 2009.07, p40
https://www.lightzine.co.kr/last.html?p=v&num=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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