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량성당(珍良聖堂)은 하양성당 8대 주임 이임춘(펠릭스 1927~1994) 신부에 의해 1958년 설립된 진량공소에서 시작되었다. 이 신부는 하양성당 재임 당시 사두었던 땅에 사재를 들여 1985년 진량공소 건물을 설립한다. 설립 초기 진량공소는 신자 10가구 30명으로 어린이들을 다 합쳐도 50명이 되지 않는 작은 공소였다. 이임춘 신부는 선종하기 전까지 진량공소에서 약 10년 동안 공소 신부로 활동하면서 미사와 교리 교실 등을 통해 내실을 다졌다.
1997년 진량공소는 같은 하양성당 소속이었던 환상공소와 평사공소를 통합하여 진량본당으로 설정되었다. 승격 이후 기존 공소건물이 노후되고 근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는 등 새로운 건물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2005년 경산 진량읍 봉화리에 새 부지를 구입하고 2007년 공사를 시작하여 2009년에 현재 성당이 완공되었다. 진량성당은 경산시 진량읍과 하양읍 환상리, 대조리, 청천리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이임춘 신부는 경산 지역의 청천공소(1959), 동강(외촌)공소(1958), 진량공소(1963), 평사공소(1969) 등 4개 공소를 설립했고, 그외의 지역에도 금호본당의 모체가 되는영천의 금호공소와 대창공소, 청도의 청도공소 역시 이 신부에 의해 세워졌다. 1927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임춘 신부는 가톨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5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군종신부를 거쳐 55년 하양본당 주임으로 부임, 무학산 개발과 성가병원 개원 등 전후 피폐한 농촌 살리기와 지역복음화에 앞장섰다. 또 '교육만이 가난의 대물림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65년과 74년 무학중ㆍ고등학교를 각각 설립해 94년 선종할 때까지 학교장으로 봉직했다.
평사공소는 1969년 설립되었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현재의 평사공소 건물은 1993년 10월 17일 완공되었고 지금도 마치 새로 지은 건물처럼 깔끔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다. 본당으로 통합된 공소는 급격히 세를 잃고 급기야 폐쇄되기도 하는데 평사공소는 오히려 활기를 잃지 않은 듯 보여 의외였다. 더구나 본당인 진량성당과의 거리도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으로 보인다.
추측컨데 진량본당의 설립이 1997년이고 신축 성전이 2009년에 완공되었던 것에 비해 평사공소의 새 건물이 1993년 완공된 것으로 보아 진량성당 초창기에서 부터새 성전 건립 이전까지는 오히려 평사공소가 본당 보다 더 나은 환경에 있었지 않나 싶다. 물론 진량성당이 궤도에 오른 이후부터 공소활동은 위축되었을 것이다. 2009년 현재 교적상 공소 신자는 84명인데 냉담 교우가 많다고 한다.
평사공소 가는 길은 마치 대학촌을 방문하는 느낌이 든다. 대구대학교가 부근에 있어 각종 위락시설과 원룸, 빌라가 즐비한 길을 따라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학생 신자들이 평사공소를 찾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대구대학교를 지나가니 아주 오래전(아마도 1998,9년 정도로 기억한다.) 강연을 위해 방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대학관계자가 신입생은 줄어들고 재학생은 서울로 편입하는 사례가 많아 지방 대학들은 머지않아 폐교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내게 토로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방대학교와 공소의 운명이 어쩌면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참고자료>
진량성당 홈페이지
https://cafe.daum.net/thomas1004
김창근, 경산시>종교>진량성당,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가톨릭신문, 경북 진량본당, 40년 된 낡은 공소건물 대신할 새 성전 마련, 2007.12.02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0712020179922
가톨릭평화신문, 대구 무학중고등학교 설립자 이임춘 신부 10주기 추모제, 2005.01.13
https://news.cpbc.co.kr/article/186046
박지현, 공소를 찾아서-진량성당 평사공소, 월간<빛> 제319호, 2009.11, p.70
https://www.lightzine.co.kr/last.html?p=v&num=1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