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고종23년) 김국주 다미아노 신부는 임고면 매호2동으로 이주하여 황강공소를 설치하고 전교하다가 1889년경 평천2동 237로 이전하여 1961년 임고공소가 설립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자세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지만, 황강공소가 평천으로 이전하면서 임고공소로 변경된 듯 보인다.(디지털영천문화대전에 김국주 다미아노 '신부'라 기록되어 있으나 천주교 인명록에서는 찾을 수 없었음을 볼 때 오류가 아닐까 싶다.)
1961년(혹은 1962년) 임고공소만으로 임고면 전체를 전교하기에 불편하여 1962년 평천공소를 설립하였고 1970년부터 두 공소는 완전히 분리된다.
1998년 9월 3일 임고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나 60년대 학교 건물이었던 지금의 평천공소(포은로 779)를 본당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마루바닥도 썩어 불안했고, 사제관 역시 예전 교실로 쓰던 흙벽집이어서 언제 허물어질 지 모를 정도로 열악하였다.
2002년 봄 새로운 위치인 포은로473번지(평천리 737-1)에서 새 성전 기공식을 가졌고 이듬해인 2003년 5월 18일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 주례로 봉헌식이 열렸다. 대지 1,200평, 연건평 300평 지상2층 규모의 새 성전은 기금마련에 어려움을 겪다가 한 후원자가 7억의 거액을 쾌척하여 착공에 들어갈 수 있었고 여기에 신자들의 노력을 더해 완공했다.
이처럼 임고성당은 임고공소와 평천공소가 합쳐져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볼 수 있는데, 2012년 현재 영천지역은 성당 네 곳(금호, 신영, 영천, 임고)과 공소 6곳(신광, 화산, 고경, 북안, 자천, 괴연)이라 기록되어 있어 평천공소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평천공소와 같은 공간을 사용하던 임고성당이 옮겨간 이후 어느 시점에서, 혹은 그 전후에 수녀원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평천공소가 되었거나, 수녀원과 공소가 공존했을 지도 모르겠다. 2018년 두피디아에 올라온 이미지를 보면 표지판에 <평천공소>가 아닌 <임고성당 평천수녀원>으로 되어 있고, 그 후 <임고천주교회 평천공소>로 바뀐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네이버지도에는 여전히 임고성당평천수녀원으로 돼 있고, 다음 지도에는 임고성당평천공소라고 돼 있다. 임고본당과 평천공소 모두 정몽주의 호를 딴 "포은로"에 위치해 있는데,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임고서원 바로 옆이 임고성당이다.(임고서원에 관해서는 아래 링크 참조.) 포은로를 따라 영천댐에 이르는 길은 벗꽃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참고자료>
정경재, 임고성당, 디지털영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정경재, 성당, 디지털영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두피디아 임고성당평천수녀원 이미지
https://www.doopedia.co.kr/m/photobox/gallery/gallery.do?_method=list_view&GAL_IDX=180921001122864
가톨릭신문, 대구대교구 임고본당, 완공까지 여력 부족 도움 호소, 2002.10.20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0210200023871
가톨릭평화신문, 대구대교구 임고본당, 2003.05.14
https://news.cpbc.co.kr/article/179583
조영화, 임고서원, 디지털영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yeongcheon.grandculture.net/yeongcheon/toc/GC05101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