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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기행/대구대교구

군위성당 부계공소

by photomaker.anon 2025. 6. 10.

부계공소의 시작은 신희조 요안나(2008년 당시 87세. 작고)로 부터 시작되었다. 부계에 선산을 마련하게 된 그녀는 1987년 이곳으로 이사오게 된다.(그녀는 대략 1921생, 부계 이주 당시 66세 정도로 추정된다.) 딸을 수녀원에 보낼 만큼 신앙은 깊었으나, 당시 이곳은 천주교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마침 경주와 왜관에서 정년을 맞은 그녀의 수녀 친구들이 부계에서 전교를 하자 제안하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수녀와 함께 이 지역에서 전교를 시작한다. 이 지역은 절과 교회가 많았기에 우선 가가호호 직접 찾아다니며 절이나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을 힘들게 모아 교리공부를 시작했으나 마땅한 공간이 없자 본인이 살고 있던 한옥을 교리 공부 장소로 제공했는데, 이것이 부계공소의 시작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교리 수업을 통해 이듬해 공소에서의 첫 세례식이 이뤄졌고 신자들이 늘어가면서 부계공소가 서서히 자리잡게 되었다. 

 

당시 왜관 수도회 수사와 안나의 집 수녀들이 수시로 찾아와 도움을 주었고 큰 행사가 있을 때 주교와 신부가 와서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주었다. 1년 후 한옥 앞마당에 공소를 새로 짓게  되어 비로소 제대로 된 공소를 마련했고 그때부터 군위성당의 사제들이 부계공소에서 정기적으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1987년 군위성당의 이찬현 신부 때 신희조씨 댁에서 첫 공소 미사를 봉헌하였고, 이후 신자들이 늘어나 1999년 1월 당시 군위본당 평협회장 신재기 이냐시오가 현 위치 2층 건물을 매입하여 교회에 봉헌했다. 건물 수리는 공소준비금과 지원금과 함께 신희조씨를 비롯한 뜻있는 이들의 봉헌으로 이루어졌다. 1999년 5월 22일 이문희 대주교 주례로 공소 경당을 축성하였다. 

 

시간이 흘러 신자들 대부분 고령이고 거동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교통편도 힘들어 미사참례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공소 건물이 노후화되어 보수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엄두 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다. 

 

2층이 성당, 1층은 모임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참고자료>

 

박지현, 군위성당 부계공소를 찾아서, 월간<빛> 제302호, 2008년 6월, p.78

https://www.lightzine.co.kr/last.html?p=v&num=854

 

프란치스코, 군위성당 > 본당60년사:부계공소연혁,2017.2.15

https://cafe.daum.net/kunwicatholic/MhsY/98?q=%EB%B6%80%EA%B3%84%EA%B3%B5%EC%86%8C%20%EC%97%B0%ED%98%81&re=1

 

천주교대구대교구, 총대리말씀, 2020.07.20 

https://www.daegu-archdiocese.or.kr/page/arch.html?srl=bishopwords&sub_category=bishop&sections=bishopwords&idx=219851&process=read&searchPart=&searchStr=&gotopage=27

 

군위성당 홈페이지

https://cafe.daum.net/kunwicat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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