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병인박해 때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의 신자들이 소백산맥을 넘어 김천의 산악 지대로 피난하면서 김천 지역으로 천주교가 전해지게 되었다. 김천시 증산면과 대항면 산간 지대를 중심으로 신자촌이 형성되고 신자가 급증하게 되자 1896년 칠곡 왜관 가실본당 2대 신부로 부임한 김성학 알렉시오 주임신부가 김천 지역에 새 성당 건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1901년 5월 27일 김천시 황금동 자라밭골에 김천본당(현 김천황금성당)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많은 공소가 세워졌다. 이후 1958년 평화성당이 분리되고 지례성당, 지좌성당, 대신성당, 신룡성당이 차례로 분리 신설되었다.
개령면에 신앙이 전해진 것은 1900년 상주에서 교안을 피해 이주한 신자 최석영 요한이 1901년 황금성당 준공식 때 만난 김완배 아오스딩과 함께 개령면 신룡리 자신의 사랑채에서 김성학 신부를 초대하여 첫 미사를 올린 것이 시작이다.
김천 황금성당은 1934년 김승연 아오스딩 신부가 대구 계산동성당을 본뜬 붉은 벽돌 첨탑 종각의 웅장한 서구식 건물로 건립되었고 이후 증가하는 신도를 수용하기 위해 1958년 탁세영 파비아노 신부가 평화성당을 지어 신도를 분산시켰다.
황금성당의 김남수 루가 주임 신부가 1961년 지례면 상부리에 성당 건립 부지를 확보하고 지례공소를 건립한다. 1967년 지례공소의 신자수가 700명을 넘어서자 1968년 성당 신축을 시작하여 같은해 11월 11일 지례성당을 준공한다.
대신성당은 신시가지 조성과 함께 관공서가 이주해오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신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1996년 8월 30일 준공된다.
1960년 김천 황금성당 소속 신룡공소가 설립되고 1961년 공소 건물이 신축되었다. 이후 개령면 동부리의 개령공소가 1962년 9월 14일 건립되었고, 감문면 문화로에 감문공소가 1970년 5월 완공되었다. 신룡성당은 개령공소와 감문공소를 통합하여 2000년 7월 8일 신룡본당으로 승격하여 제1대 박정근 테오디모 신부가 부임했고, 2002년 9월 29일 새 성당을 준공하여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 주례로 봉헌식을 열였다.
개령공소는 독일 국민들로부터 가난한 나라 국민돕기 운동을 전개하여 모금된 돈을 왜관수도원에 전달해왔는데, 이 자금으로 개령면 동부2동에 오랜 숙원인 공소 건물이 55평 대지에 철근콘크리트로 건립되어 1964년 12월 22일 왜관수도원장 집전하에 거행되었다.
개령공소와 감문공소는 신룡성당으로 통합되었지만 여전히 공소로 남아 있다. 개령공소 역시 왜관수도원의 알빈슈미트 신부가 설계한 것이다.






<참고자료>
가톨릭평화신문, [공소(公所)] 23. 대구대교구 신룡본당 개령·감문공소, 2023.06.14
https://news.cpbc.co.kr/article/1110165
가톨릭신문, 개령공소 낙성, 1965.01.01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209060134685
송호상,천주교,디지털김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원자, 성당, 디지털김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워
장원자, 김천황금성당, 디지털김천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www.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1251
장원자, 신룡성당, 디지털김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www.grandculture.net/gimcheon/dir/GC03201247
장원자, 대신성당, 디지털김천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www.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1245
주소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96 (동부길1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