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말부터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김보록 로베르(Robert) 신부가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신나무골의 교우촌을 중심으로 경상도 지방을 순회 전교를 하는 과정에서 김천 지역의 신자촌에도 전교를 하였다. 1895년 칠곡군 왜관읍에 조선교구의 11번째 본당인 가실성당이 설립된 후 초대 파이아스(C. Pailhasse)[하경조] 신부와 2대 신부 김성학 알렉스 신부에 의해 경상도 북부 지역에 대한 전교가 행해졌다.
김성학 신부는 김천 지역이 농업이 발달된 지역으로 안정적 인구를 확보하고 있고, 또 경부선이 부설되면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점을 고려하여 김천에 새로운 성당의 건립을 추진하였다. 조선 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여러 차례 건의하여 마침내 승인을 받은 김성학 신부는 김천시 지좌동(일명 마잠)에서 민가를 빌려 전교를 시작하였다. 이후 교세가 확장되자 1907년 황금동에 새 성전을 지어 김천본당의 근거지를 옮겼다. 이 성당이 지금의 김천황금성당이다. 황금동의 김천본당은 고 김수환 추기경이 1955년부터 약 1년간 사목을 담당한 곳이기도 하다.
아천공소(牙川公所)는 김천시 어모면 옥율동에 살던 박팔문 집안에 평택으로 출가한 교인이었던 누나가 6.25때 친정으로 피난와서 집안에 전교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황금성당 최재선 요한 신부 재임시 아가다 회장이 매주 방문교리를 실시하여 1952년 박팔문의 아들 박희철이 영세했고 1953년 김수환 스테파노 신부 재임시에는 박팔문이 세례를 받고 공소회장으로 활약하며 가정집을 공소로 꾸몄다. 당시 신자 수는 약 70여 명으로 황금성당 소속 공소였다.
1956년 성베네딕도 수도원 소속의 탁세영 파비안 신부가 황금성당 7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재임하던 중 새로운 성당 신설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 1958년 10월 김천시 평화동에 평화성당이 건립되었으며 탁세영 신부가 초대 신부로 부임하였다. 황금성당 소속이었던 아천공소는 1958년 10월 25일 평화성당 소속 공소가 된다. 이후 1996년 김천시 신음동에 대신성당을 분리함에 따라 아천공소는 대신성당으로 소속이 바뀌게 된다. 지금의 아천공소 건물은 왜관수도원 알빈 슈미트 신부의 설계로 1964년 건축되었다.








<참고자료>
송호상,천주교,디지털김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걍경규,본당120년사 자료실>본당공소이야기, 김천황금성당 홈페이지, 2022.11.27
https://cafe.daum.net/kimchonhounggumdong/O5Fa/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