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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기행/대구대교구

평화성당 직지공소

by photomaker.anon 2025. 8. 20.

직지공소는 김천시 대항면 인근 유명 사찰 직지사(直指寺) 아래를 흐르는 직지천변을 접한 향천동(香川洞)에 위치해 있다. 이 마을은 박해시대 때부터 자리잡은 유서깊은 교우촌으로 '지대골'로 불렸다. 조선말에는 충청도 황간에 속해 있었으나 1941년 여러 마을을 통합하여 김천군 대항면 향천동으로 개편되었다. 인근 황악산에서 발원한 직지천이 흐르고 있어 조선시대부터 옹기를 굽는 가마골이 많았다.

 

 

김천 지역에 교우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부터이다. 「사학징의」에 따르면 충청도 덕산에 살던 천주교인 박춘산이 김천으로 유배됐다. 박춘산은 복자 정산필(베드로)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었다. 또 부산 동래에 살던 현계탁이 김천 증산으로 귀양왔다. 이처럼 김천은 신유박해 이후 신앙 때문에 유배 온 교우들에 의해 복음이 처음으로 전래됐다. 이후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 이후 경기ㆍ충청ㆍ전라도 지역의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경상도 북부 산간으로 숨어들어 교우촌을 일구고 살았다. 병인박해 시기 김천 일대에 형성된 대표적인 교우촌이 김천 증산면 황점리 장자터, 장전리 선무터, 지좌동 마잠, 대항면 향천리 지대골, 봉산면 광천리 곤천, 남면 부상리 공소다.

 

김천 지대골 교우촌은 김수환 추기경의 집안과 연결된다. 김 추기경의 할아버지 김보현 요한은 1868년(무진박해) 순교했고, 아버지 김영석은 직지사 아래 옹기마을 지대골 교우촌에서 형 김동한 신부를 낳았다.

 

또 병인박해 이후 형성된 지대골 교우촌에는 1890년대 말 순교자 후손인 서필수(마르티노) 가정과 박경하(토마스) 가정도 살았다. 1950년 김천본당(현 황금본당)을 사목하던 최재선 신부가 지대골 교우촌 공소 건너편 초가를 매입해 임시 공소로 사용하면서 ‘직지공소’라 이름 지었다. 이후 1958년 김천 평화본당이 설립되면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사목을 담당했다. 지대골 교우촌 신자들은 새로운 공소 자리를 지금의 복전동에 마련했고, 1967년 왜관 수도원 알빈 슈미트 신부의 설계로 공소 건물을 지은 것이 바로 지금의 직지공소이다.

3개의 수직줄창을 만들어 자연광으로 제대를 비추게 설계되었다.
알빈 슈미트 신부의 트레이드 마크인 종탑.

 

 

직지공소는 전례와 기도 뿐만 아니라 친교와 작업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최대한의 공간 확보를 위해 가운데 보를 없앴다. 또한 회중이 전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좌석이 제대를 향하도록 배치했고 천장의 선을 통해 제대와 십자가로 시선을 집중시키게 설계했다. 제단 좌우에 3개의 줄창을 통해 자연광으로 제대를 비추게 했으며, 수직 기둥을 노란색으로 색칠하여 제단의 집중도를 높임과 동시에 내부 공간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직지공소 설립 당시 교우수는 185명이었고, 한때 200명을 넘기기도 했으나 도시화에 따른 이농현상으로 교우수가 급감해 현재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공소 내부 부속 건물에 교인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자료>

 

평화성당 홈페이지

https://cafe.daum.net/dapacem

 

가톨릭평화신문, [공소(公所)] 21. 대구대교구 김천 평화성당 직지공소, 2023.05.29

https://news.cpbc.co.kr/article/1109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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