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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성당 오두리공소

강화도 교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리놀(Marynoll. '마리아의 언덕'이란 뜻이다.) 외방선교회를 살펴봐야 한다. 1961년 6월 6일 인천교구가 설정되고 초대 교구장으로 윌리엄 맥노튼(한국명 나길모) 주교가 임명됐다. 교구 설정 당시 16명의 성직자가 모두 메리놀 외방선교회 출신이었다. 강화도에는 토마스 맥키 신부가 1959년 제2대 강화본당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메리놀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진출했다. 이후 패트릭 파터슨, 마이클 브란스필드, 존 둔니간, 조셉 룃트게일, 로버트 펠리니 신부가 강화도에서 사목했다. 메리놀 외방선교회 신부들은 엄격하고 보수적이었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과 달리 개방적이고 진취적이어서 지역민들과 빨리 친숙해졌고 선교 활동도 그만큼 활발했다. 특히 1963년 제3대 강화본당..

온수성당 초지공소

60여 년 이어온 신앙의 못자리 ​초지진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인천교구 온수본당 초지공소가 있다. 6ㆍ25 전쟁 휴전 후 초대 강화본당 주임인 장금구 신부가 강화도 선교를 자원했다. “강화도 온수리란 곳에 차를 내려 신자들이 있는가 찾아보다가 멀지 않은 곳에 옹기 굽는 집이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그곳에 가 보았다. 신자 170여 명이 집단 거주하고 있었으나 다른 곳엔 교우가 없고 강화읍 대산리에 몇 집이 있을 뿐이었다. 인구 10만이 넘는 강화군에 성공회당이 3개요, 개신교 예배당이 무려 60여 개가 있으나 성당은 공소만 둘, 그것도 인천본당에 속해 있어서 1년에 한두 번 신부가 다녀갈 뿐이었다.”(「강화성당 이야기」 54쪽, 장금구 신부 회고록 중에서) 장 신부의 말처럼 1928년 충남 서산군 ..

통진성당 애기봉공소

해마다 성탄 즈음이면 미디어에 빠지지 않고 나오던 기사가 있다.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 소식. 비록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해마다 기사가 반복되는 통에 '애기봉 트리 점등'은 내 기억에 영구히 박제되었다. 물론 현재 그 행사는 남북관계 문제로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아무튼 '애기봉' 기사를 보며 들었던 질문은,'OO봉'이니 필시 봉우리(峯) 일테고, '애기'라는 아리송한 단어를 보며 도대체 뭘까 궁금해서 찾아보곤 피식 웃었던 기억이 있다. '애기'는 평안감사가 사랑하는 애첩의 이름이라 하는데, 아무튼 병자호란때 애기(愛妓)를 데리고 한양으로 피난을 가다가 청나라 군인에게 잡혀 감사는 북으로 끌려가고 애기만 한강을 넘게 되었다. 애기는 매일 북녘 하늘을 바라 보며 감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결국 병..

대곶성당 석정공소

월남한 신자들이 신앙공동체 형성 김포시 대곶면 소재지(율생리)에서 서북쪽으로 4km 거리에 위치한 대곶성당(주임신부 정승익 바시리오) 석정리공소(회장 심상수 바오로)는 한국 전쟁 때 북녘 황해도에서 피난 차 월남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중 김봉조 베드로 김경옥 마리아 부부가 주축이 되어 처음에는 가톨릭 신자 서너 가정이 모여서 거물리공소 통진성당 등으로 다니다가 나중에는 양곡성당으로 다니곤 하였다고 한다. 김경옥 자매님은 1926년생으로 황해도 연백 연안금에서 유아세례를 받으신 분으로 21세 때 피난 오셔서 석정리에 정착하였으며 초창기에는 모일 장소가 없어 신자들의 집을 옮겨 다니며 모임을 갖거나 빈집에서 공소예절을 하기도 하였다. 피난 온 신자들은 남의 일이나 머슴살이로..

법원리성당, 법원리성당 주내공소

법원리성당 법원리성당은 1958년 1월 설립된 의정부성당 소속 법원리공소에서 출발한다. 이듬해 본당 승격이 결정되어 부지를 매입하고 1962년 6월 3일 착공하여 그 해 9월 25일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 주례로 법원리성당 낙성식이 열렸다. 현재의 성전은 1989년 3월에 착공하여 1990년 5월 24일 완공하여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주례로 축성식이 열렸다. 2004년 교구 분가로 서울교구에서 의정부교구로 편입되었다. 법원리성당에 소속된 공소로 광탄, 주내, 갈곡리공소가 있었으나 2009년 8월 27일 광탄공소가 본당으로 승격 후 분가하고, 2018년 8월 24일 갈곡리(칠울)공소가 준본당으로 승격함에 따라 현재 주내공소만 법원리성당 관할 공소로 남아 있다.   광탄성당  갈곡리성당(칠울공소) 갈곡리성당..

상리성당 대광리공소

대광리공소는 경기도 최북단에 있는 공소로 1957년 6월 4일 철원본당 관할로 공소예절을 드리다가 1963년 행정구역이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변경됨에 따라 동두천본당 관할로 이관되었다.(철원성당60년사) 1967년 가을 동두천본당 제5대 이창숙 그레고리오 신부 시절 공소를 개설하여 윤공희 대주교의 집전으로 낙성식을 갖게 되었다. 동두천본당 제8대 한정관 바오로 신부 시절에는 대광리 교우들의 자체 모금과 본당 지원으로 건물을 보수하고 등기서류를 완비하였다.(동두천성당50년사) 1979년 5월 31일 전곡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하면서 전곡성당 관할이 되었고, 1988년경 공소건물이 낙후되어 신자들이 건물을 신축하려고 모금을 시작하여 1989년 3월 경에 전곡성당 제4대 김정남 안드레아 신부 시절에 기존 시멘트벽돌..

적성성당 백학공소

백학공소는 평신도 선교사 김윤애(율리안나)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2007년 6월 7일 설립됐다. 이후 2010년 2월 26일 의정부교구장 이한택 주교의 승인과 계약에 따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수도자를 파견해 오늘까지 백학공소를 관리, 운영하고 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백학공소 수녀원인 '멜 베아트릭스의 집'을 공소 인근에 짓고 수도자 34명을 파견했다. 이때부터 백학공소는 6.25당시 전사한 모든 영혼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의 집이 되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초대 한국 관구장이었던 베아트릭스 드 마리 오두아르 수녀는 6.25 전쟁때 피랍돼 중강진으로 끌려가는 '죽음의 행진'도중 북한군에 피살돼 순교했다. 교적상 공소신자 수는 120명이지만 대부분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이다. 그..

적성성당 장파공소

파주시 장파리 마을은 6.25전쟁으로 잉태된 1950~60년대 한국 사회의 두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다.  지형이 마루처럼 길다고 해서 장마루라고도 불리는 장파리는 전쟁 직후 임진강 건너 DMZ(비무장지대) 인근 JSA(공동경비구역)에 주둔하며 파괴된 교량, 건물을 복구하던 미군 28연대(공병대) 병사들이 부대 복귀하거나 휴가를 위해 머물면서 마을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인근 파평면 지장리과 적서면 고란포 마을 주민들이 모여 세를 형성한 장파리 마을은 미군 주둔에 따라 상주 인구 5천명, 유동 인구도 3만명이 넘쳐날 정도로 활기가 돌았다고 한다. 당시 미군 상대로 운영되던 '라스트챈스 클럽,' '천주교 장파공소,' 리비 중사가 건설한 '리비교' 이발소 등이 여전히 존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