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기행/원주교구

의림동성당 쌍용공소

photomaker.anon 2024. 3. 30. 18:29

쌍용공소는 원주교구 설정 후 첫번째로 봉헌된 공소이며 감실에 성체를 모시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1963년경 천주교 신자였던 쌍용역장의 부인 김사난이 역전 마을 주변 사경자를 선교하였고, 사경자가 최수억(토마스) 등 지역주민 3~4명을 선교하여 사경자댁 내실에서 기도를 드리며 영월본당에 연락되어 당시 영월본당 전교부장 김윤경(타대오) 현제가 쌍용을 방문하여 세례준비를 시키고 영월본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새벽에 통학열차 편으로 영월본당에 가서 3~4시간 기다려 주일 미사를 봉헌하고 다시 열차 편으로 귀가하며 신앙을 키웠다. 본당 최동오 아나타시오 주임신부가 공소를 찾아 가정방문과 기도와 격려를 해줘 신자들이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1962년 쌍용지역에 시멘트공장 쌍용양회가 건설되면서 공장 종업원과 현장 인부 및 그 가족들이 대거 입주하게 되어 천주교 신자들이 당시 교통형편상 영월이나 제천 지역 본당에 가서 미사를 드릴 수 없는 형편이어서 영월본당에 연락하여 사경자댁 내실에서 공소예절을 봉헌하고 있었다. 초대 공소회장 황관 스테파노의 적극적인 선교로 신자수가 급증하자 영월본당에서 춘천교구청에 품신하여 1965년 초 영월본당에서 토지를 구입하여 동년 4월에 착공하여 8월 3일 준공하고 9월 3일 봉헌되었다. 1977년 12월 1일 제천 의림동성당으로 편입되었고, 다시 제천 청전동성당으로 이관되었다가 2001년 10월 10일 다시 의림동 본당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쌍용공소의 잦은 소속 변경에는 한국 산업구조 변화, 구체적으로는 탄광산업의 부침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영월광업소가 호황을 누릴때 이 지역 인구도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1962년에 설립된 영월성당 관할 마차공소는 대한석탄공사로부터 현 마차공소의 자리를 기증받아 건물과 사제관을 새로 짓고 마차성당으로 승격되었고, 쌍용공소도 마차성당 관할이 된다. 그러나 탄광산업이 사양길로 접어 들자 마차성당은 3년 만에 다시 공소로 격하되었고 쌍용공소 역시 영월성당으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다. 이처럼 마차공소와 쌍용공소의 역사는 탄광촌의 흥망성쇠와 그 흐름을 같이 한다.

 

원주교구는 교황청 령에 의해 1965년 3월 22일 설정되었고 6월 29일 지학순 주교의 성성식과 착좌식이 거행되었기에 쌍용공소는 지학순 교구장 재임 중 첫번째로 봉헌된 공소다. 

 

2015년 8월 25~26일 쌍용공소 설정 5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는 자리에서 김지석 주교에게 귀농한 교우들이 시골에 오니 본당에서 평일 미사를 봉헌할 수 없으니 공소 감실에 성체를 모셔서 틈날 때 성체조배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청원을 하여 승락을 받아 감실에 성체를 모시는 공소가 되었다. 귀농한 신자들이 증가하면서 본당 미사를 선호하는 형편이라 공소 유지 및 활성화를 위해 2007년 12월 30일부터 주임신부가 매주 토요일 4시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참고자료>

 

월간 레지오 마리애, 더불어살기_원주교구 의림동성당 쌍용공소, 2020.07

https://lm.or.kr/?p=12413 

 

강원랜드, 탄광문화유산을 찾아서:탄광촌의 흥망성쇠를 담은 공소들, 강원랜드 홍보팀

http://www.1340webzine.com/data/2018_0304/sub21.html?fbclid=IwAR1k8-aliEwiWnMJ3PsDik9mI1LqRcnF8BgXQ_DV970VENvI9BFV8Yj--dk_aem_AR8H_KcWW_2D0DlxsF8jlpYPvF11L1q0Ji5Hdo72CuZ7_xCpCXLklO2LMzu9xMD0Z2881LOsY3fkBv7G-HL04d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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