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천성당의 전신인 장천공소는 1950년대 말 장천 곰실 문충길 베드로 집 땅에 공소 건물을 지으며 시작했는데, 교우들이 늘어나자 일제시대 신사 자리였던 장소를 확보하게 된다. 당시에 선산 인근 사목을 담당하던 이는 왜관 베네딕도회 노도주 아르놀드 신부였는데, 독일 본국에서 요양 중 기금을 마련하여 귀국하여 1963년 12월에 지금의 장천공소를 짓게 되고 인근 공소 신자들도 새로 지어진 장천공소에서 전례에 참여하게 된다. 1964년 1월 정창열 아우구스티노 전 회장을 재임명하고 장천공소에 주재하면서 북부지방의 공소 교우들을 지도하게 했고 공소회장으로 박 도미니코를 임명한다.
장천공소는 칠곡본당 소속이었는데, 당시 칠곡본당 산하에 11개 공소가 있었다. 이전에는 왜관수도원에서 예산을 부담하였지만 감당하기 어려워 북부지방의 공소는 선산본당으로, 애생원은 산동본당에서 관리하도록 결정하면서 칠곡본당은 동명, 남원, 다부, 금화공소 만을 관리하고 교우수가 5.6명이었던 도남공소는 폐쇄하기로 한다.
1969년 11월 1일 해평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됨에 따라 인근 도개, 장천, 천평공소들이 모두 해평본당 관할이 되었다. 하지만 교우수가 소폭 감소했을 뿐 해평본당 보다 신자 수가 많았다. 한 번의 주일미사와 두 번의 평일미사가 있었고 2005년에는 감실도 안치되었다.
2010년 8월 27일 해평본당 소속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관할 공소로는 가산, 임봉, 산동공소가 있으며, 2014년 7월 27일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주례로 새 성당 봉헌식을 가졌다.
가산공소는 현재 위치에서 머지 않은 곳에 1966년 5월 칠곡본당 금화공소가 생겨 30년 넘는 역사를 이어오다 도로건설로 철거하게 되었다. 교구에서 현 위치에 1300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가산공소를 신축하고 1995년 4월 23일 서정덕 주교 주례로 공소 축복식을 거행했다. 최초에는 동명성당 관할이었으나, 2010년 장천성당이 본당으로 승격함에 따라 장천성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때문에 신자들상당 수가 이곳에서 태어나 금화공소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이들이 많아 신앙심이 깊다 한다. 2010년 현재 교적 상 신자 수 75명 가운데 20여 명의 신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신자 한 분이 공소사택에 머물며 공소를 관리하고 있다. 2024년 가산공소 부지 일부를 주차장으로 용도 변경하여 지금에 이른다.






<참고자료>
가톨릭신문, 장천공소 40평짜리 준공, 1964.01.12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206020119577
장천성당 홈페이지
https://cafe.daum.net/jangcheoncatholic
허남진, 장천성당역사>장천성당 공소> 정천공소이야기, 장천성당 홈페이지, 2024.09.08
https://cafe.daum.net/jangcheoncatholic/hgdo/15
윗글은 노현석 베드로 신학생이 박학보 도미니코 외 공소 여러 교우의 증언을 취함한 것이다.
허남진, 장천성당역사>장천성당 공소> 칠곡본당 50년사에서, 장천성당 홈페이지, 2024.09.08
https://cafe.daum.net/jangcheoncatholic/hgdo/16
가톨릭신문, [새 성당 봉헌식] 대구대교구 구미 장천본당, 2014.07.20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407150095018
박지현, 공소를 찾아서-장천성당 가산공소, 월간<빛> 제332호, 2010.12, p.92
https://www.lightzine.co.kr/last.html?p=v&num=1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