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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기행/대구대교구

초전성당 철산공소

by photomaker.anon 2026. 5. 1.

경북 성주 지역의 본당과 공소들의 뿌리는 낙산(가실)본당(1894년)이다. 여기서 왜관본당(1928년)이 분립되고 거기서 성주본당(1950년)과 가천본당(1961년), 초전본당(1980년), 선남본당(2000년) 등이 성주지역 공소를 관할하면서 소속이 조정된다.
 
가톨릭신문 2008년 9월 14일 기사에 철산공소가 9월 5일 공소 70주년 기념 리모델링을 마치고 축복식을 가졌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이를 기반으로 역산하면 철산공소는 1938년 설립되었다는 셈이다. 즉, 철산공소는 성주 지역의 모든 본당에 앞서 설립된 곳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이 지역을 관할하던 왜관본당의 자료(⌜倭館半世紀-倭館天主敎會五十年史-1928-1978⌟ 이하 ⌜왜관반세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왜관반세기에서 가실본당 4대 주임 소 신부(H.Saucet, 蘇世德) 때(1907~1912) 성주 월항면 철산, 용암면 금은개 등지까지 합쳐 교우 50명으로 판공을 치르는 낙산본당 소속 공소가 되어 성주본당의 요람이 되었다는 기록(pp.105-106)으로 미루어 성주 지역의 신앙이 이미 활성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28년 왜관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고 소속 공소인 산막터(성산)공소 역시 성주본당으로 승격(1950년)된다. 이후 성주본당은 공소 포함 7개 면 17개 공소에 4,915명의 신자를 사목하는 큰 본당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책에 실린 관할공소 변천 일람표에 월항면 장산동의 철산공소가 1945년에 시작되어 1950년 3월 19일 까지 왜관본당의 관할 기간을 거쳐 성주본당으로 소속 이관(p.364)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철산공소가 생기기 전 산막터공소로 가서 첨례를 보던 김말촌 야고보 가족과 박상봉 마티아 가족이 1945년 10월 이명우 야고보 왜관본당 신부에게 공소 설정 허락을 받아 월항면 장산1동 소재 김말촌의 방 한 칸을 빌려 당시 신자인 김말촌 가족 5명, 박상봉 가족 5명, 송마리아 가족 6명이 김말촌을 회장으로 추대하여 첨례와 교리지도를 한 것이 철산공소의 시작이다. 그후 박상봉 회장이 뒤를 이어 교세가 예비자 포함 백 여명으로 증가되었다.
 
철산공소는 1950년 성주본당 설립 후 성주본당으로 편입되었고 박상봉 회장의 개인 소유 대지 백 여평을 철산공소 건축부지로 기증하였다. 여기에 신자들의 재정 협조와 성주본당 정묵덕 엑베르트 신부의 보조로 1956년 7월 20일 목조기와 25평 공소건물을 축성하였다. 1977년 4월 15일 공소 건물을 헐고 대지 백 여평을 더 사들여 42평의 벽돌 슬레이트 건물을 축성했다.(pp.434-435)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낡은 공소를 리모델링 하여 2008년 9월 5일 축복식을 가졌다.
 
이곳을 방문했던 다른 분이 공소회장과 나눈 대화에서 특이한 지점은 공소 내부 제대 공사를 하면서 벽에 그려진 성화를 덮어버린 것을 속상해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높은 확률로 앙드레부통 신부의 작품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지역 공소 상당수에서 그의 벽화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복원을 시도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오랜 역사를 가진 철산공소인 만큼 가톨릭신문에서는 철산공소를 여러 성직자를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불리게 된 이유로 박상봉 마티아 회장(1912~1999)의 헌신과 가족사가 있다. 박도식 신부(대구 가톨릭대학교 총장),  박문식 신부(꼰벤뚜알 성프란치스꼬 수도회)와 박애순 수녀(대구 포교 성베네딕도수녀회)의 부친이 바로 박상봉 마티아 회장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철산공소에서 활동하던 시절(1938~1963) 어린 박석희 주교가 놀러올 때마다 그에게 신심을 키워줬다. 여기에 더해 박 주교는 당시 성주에서 열심히 사목하던 왜관수도원 신부들의 삶에 감명을 받아 서울가톨릭대학으로 지원하여 사제의 꿈을 이룬다.   
 
박상봉 회장은 철산공소를 만들어 초전본당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초전공소 회장 시절 장인으로부터 염하는 방법과 장례 절차를 익혀 그가 수습한 시신만도 수천구에 달한다. 그는 장례 과정을 특별한 것이 아니라 태어났을 때 누군가 탯줄을 끊어주듯이 삶의 과정상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1984년에는 순교자 이선이 묘를 발굴하고 신나무골로 이전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이어 1987년 김범우 순교자 묘 발굴에도 깊이 관여했다. 1999년 4월 16일 88세로 선종했고 대구 대덕성당에서 열린 장례미사에는 대구대교구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와 안동교구장 박석희 주교 등 그를 따르던 많은 사제와 수도자가 참석했다.
 
 
이처럼 모든 공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연과 세월이라는 씨줄과 날줄이 켜켜히 쌓여 있고 그것이 역사를 만든다. 그 공간 속 숨은 이야기를 놓치고 겉모습만 보고 지나치면 많은 것들을 놓친다. 철산공소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공소는 어설프고 빈약하고 초라하다. 하지만 그 안의 이야기는 빛나고 아름답다. 내가 공소를 찾는 이유다.  
 
 

 
 
<참고자료>
 
왜관성당, ⌜倭館半世紀-倭館天主敎會五十年史-1928-1978⌟
 
송호상, 철산공소, 디지털성주문화대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www.grandculture.net/seongju/toc/GC08401020
 
내부 모습과 공소회장과의 대화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안드레아, 철산공소/대구대교구, 티스토리
https://ohandrew.tistory.com/7075409
 
가톨릭신문, 대구 초전본당 철산공소 70주년 기념 리모델링, 2008.09.14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0809140200605
 
 
박상봉 마티아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 참고.
 
가톨릭신문, [이런 사람 이런 삶] 4월 16일 선종한 박상봉(마티아) 옹, 1999.04.25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007210278884
 
박석희 주교(1941~2000)는 1941년생으로 1971년 서품을 받고 1990년 제2대 안동교구장을 지낸 후 2000년 10월 9일 선종했다. 그의 연혁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 참고. 
 
가톨릭신문, [박석희 주교 선종 특집] 진리 위해 한길 걸은 삶 고(故) 박석희 주교, 2000.10.08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0010150226028
 
 
 

초전성당 철산공소경북 성주군 월항면 장산길 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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