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기행/춘천교구

해안성당 방산공소

photomaker.anon 2024. 3. 16. 17:19

지금의 방산공소는 2010.11.27일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가졌다. 그 이전에는 방산공소는 '공소 없는 공소공동체' 였다는 말이다. 의아하지만 사정을 알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방산공소는 처음부터 공소건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 한다. 오히려 방산공소 공동체의 역사는 매우 깊은데, 1920년대 김유용 신부가 방산공소를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고, 1947년 양양본당 이광재 신부 당시에도 방산공소가 성사계획에 들어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1960년 구인란 주교 사목방문 시 허름한 공소건물이 철거된 이래 2010년까지 50년 이상 성전 없는 신앙생활을 이어온 셈이다. 그리고 양구본당 하화식 주임신부가 사목하던 시절에 비로소 성전을 짓고 봉헌하게 된 것이다. 

 

반세기 동안 성전없이 신앙생활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뿌리 깊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산공소 일대는 박해 시절 산속으로 숨어온 신자들이 교우촌을 형성했던 곳이다. 아직도 방산면 곳곳에 적지 않은 수의 가마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방산공소가 보이는 곳에 도착하니 내가 본당을 공소로 착각하고 잘못 찾아온 건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도무지 이런 규모의 공소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당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크기와 규모에 눈이 휘둥그래해진다.  마침 농기구 정비를 하는 분이 있어 다가가 인사를 건네니 공소회장님이었다. 한참을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 촬영 허락을 구한 다음에 외관을 둘러보고 안으로 들어간다.

 

 

공소 뒷편 성모상을 돌아 램프를 따라 내부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설계가 예사롭지 않음이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국민대학교 건축학과 김용성 바오로 교수의 작품이다. 전문을 옮기기는 힘들지만 아래 성전으로 오르는 램프 경사로는 고통의 신비를 나타내기 위함이고, 성모동산은 프랑스 루르드에서와 같은 부드러운 원형 공간 구성을 의도한 것이라 한다.

 

성전 내부로 들어가면 자연채광을 이용한 십자가 인상적이다. 예수상과 함께 나타나는 빛의 신비를 의미한 것이라 한다. 둥근 벽면을 따라 십자가가 배치된 중앙의 사각형으로 시선이 유도되도록 만든 것도 의도한 것이리라. 음향설비도 제대로 갖춰 졌고 14처도 공소에서 흔히 보던 것과 달리 개성적이다. 

 

 

가만 보면 성전 위 십자가도 예사롭지 않다. 저기엔 또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까? 비록 공소 곳곳에 숨어 있는 의미들을 다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것들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흥미로운 기행이었다. 

 

 

* 미사시간 : 주일 14시, 평일 목요일 10시. 단 변동이 있을 지 모르니 다음카페 해안성당에서 확인바람. 

 

 

<참고자료>

 

가톨릭평화신문, [새성전 봉헌] 춘천교구 양구본당 방산공소, 2010.12.07

https://news.cpbc.co.kr/article/359890

 

가톨릭신문, [여름기획-공소의 재발견] 춘천교구 방산공소, 2012.07.22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245367

 

다음카페 해안성당
https://cafe.daum.net/haeancat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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