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 5

사벌퇴강성당, 목가공동체, 목가공소

사벌퇴강성당 퇴강공소는 1899년 김운배 호노리오, 김종록 클레멘스, 최면집 마르티노 등이 가실본당 문경공소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신앙공동체를 시작하였고 1903년 공소로 설정되었다. 1922년에는 경북 북부지역을 관할하는 본당으로 승격된 후 도시화와 이농현상으로 1968년부터 함창본당 관할공소로 이어져 왔다.  1911년 조선대목구에서 분할하여 대구대목구가 설정되는 해에 김문옥 요셉 신부가 김천본당 2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북부지역에 많은 성당을 지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1922년에 설립된 퇴강성당(공평성당도 같은 해에 설립되었다.)이다. 당시 퇴강본당은 상주군 지역(함창읍, 사벌면, 공검면, 화서면, 내서면, 중동면 등)과 예천지역(지보면, 호명면 및 안동군, 의성군 포함)을 관할하였다. 한..

예천성당 오천공소

1963년 6월 2일 박노제 예천본당 신부가 호명면 오천동을 방문하여 오천공소를 설정하였다. 오천동은 개신교가 먼저 전교된 지역으로, 이날 장임상 베드로(초대 회장), 장병호 야고버(2대 회장) 등이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을 하면서 전교가 활기를 얻은 곳이다.  1964년 9월 11일 도장공소를 건축하고 남은 자재로 대지 210평 위에 시멘트 벽돌조 회당 21평, 식관 9평의 건물을 신축하여 1965년 1월 4일 축성식을 하였다. 1990년 3월 18일 성모상 축성식이 열렸다. 이후 건물이 낡아 현재 모습의 단층 건물로 새롭게 건축하고 2002년 12월 15일 권혁주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올렸다.  오천공소는 갈전공소와 함께 갈전마티아 성당의 뿌리가 되는 공소다. 경상북도 도청이 안동으로 이전됨으로써 ..

예천성당 용문공소

이 지역은 소백산맥의 줄기가 뻗어 있는 산악이 중첩된 곳으로 되어 있어 천주교 박해시대 신자들이 피난했던 지역이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1960년 4월 11일 노광명 로제리오 제6대 예천본당 신부가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동 507번지에 용문공소를 설정하여 진상진 베드로를 공소회장에 선임하고 329평의 대지 위에 건평 30평의 공소 건물을 세웠다. 공소 설정 당시 신자수는 5세대 14명이던 것이 진상진 회장의 노력으로 1969년에는 20세대 56명으로 늘어났다. 1978년 11월 19일 공소 신자 10여 세대가 공소 건물의 기와 지붕을 슬래트로 개조하였다. 현재 모습으로 미루어 그후 많은 개량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상세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천주교 안동교구 홈페이지 > 성당/..

예천성당 지보공소

1861년 6월 15일 최양업 신부 선종 이후 1861년 베르뇌 주교는 성직자들에게 다시 구역을 지정해 주었고, 이때 1857년 조선에 입국한 페롱 신부가 경상도 서북부 지역인 상주, 문경, 선산, 예천, 안동지방을 맡아 사목을 시작하였다.  원래 문경 상주 지역은 1895년 로베르 신부의 대구본당설립으로 대구본당 관할이었다. 1894년 12월 27일 가실본당이, 1901년 김천본당이 설립됨에 따라 문경, 상주지역은 김천본당 관할이 되고 예천 안동 지역은 가실본당 관할로 남게 되었다.  예천본당은 1932년 5월 22일 설정되었고, 같은 해 9월 15일 신축성당 낙성식을 가졌고 11월 14일 대구교구장 안세화 플로리아노 주교 주제로 축성식을 올린 유서 깊은 성당이다. 예천본당은 원래 대구교구 소속이었..

휴천동성당 부석공소

부석공소의 설립은 1977년 5월 17일로 기록되어 있다. 1960년대 이전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당시 구호품 배급으로 소위 '밀가루신자'가 다수 있어 부석교회 옆 창고 건물에서 주일침례를 보았다고 전해지나 구호품이 떨어지자 모두 떠나가고 5,6명 만 남아 남석심 교우집에서 주일침례를 이어간다. 1977년 영주본당 소속이었고 1980년에는 풍기본당 소속이었으나 1991년 12월 1일 영주 휴천동본당으로 소속이 바뀐다. 1973년 부석에는 어르신 6명이 가정집에서 공소예절을 드리고 있었는데, 당시 26세 새댁이던 정건희 우슬라가 부석으로 시집와서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회합을 이끌어갔고 부석주유소를 운영하면서 2층에서 풍기성당 안덕화 베드로 신부를 모시고 미사를 드렸다. 당시 외인이었던 남편이 두봉 주..